조각

[뷔민] 썰.

몽블랑11 2017. 2. 3. 17:01




[뷔민] 썰. 어촌마을에 전학 온 태형 X 심장병 지민

w.몽블랑




선천적 심장병이 있는 지민이. 한 번도 뛰어본 적 없고 햇빛조차 별로 받아본 적 없이 하얗고 뽀얀 피부에 말 없는 지민이. 똑같은 옷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어도 눈에 확 틔는 아이였음. 



태형이는 사람도 얼마 안 사는 이 해변 마을로 전학 온 전학생이었음. 전학 온 첫날 창가 제일 뒷자리에 앉아 제 손가락 사이로 햇빛을 통과시키고 있는 지민이가 굉장히 뇌리에 박힘. 제일 뒷자리의 지민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태형이만 봤음.



그치만 반 아이들은 그런 지민이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음. 교실에서 뛰는 일, 힘든 일 모두 제외되고 학교에도 가끔 며칠씩 빠지는 지민이가 반 아이들과 제대로 융화될 리 없었음. 그리고 지민이를 괴롭히고 도망가 버리면 지민이가 뛰어서는 못 쫓아온다는 걸 어릴 적부터 알았기 때문에 괴롭히는 일도 수두룩 빽빽이었음. 장난쳐 놓고 낄낄거리며 도망가 버리는 일. 



태형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지민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음. 



그래서 태형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지민이에게 다가가봤음. 그런데 지민이가 먼저 벽을 치고 뒤로 물러섬. 겁이 많아 그런 건 알겠는데 한 발짝 가면 두 발짝 물러나고 두 발짝 다가가면 다섯 발짝 물러남. 태형이는 하다하다 그게 정말 마음에 안 들어서 또 도망치려는 지민이를 도망치지 못하게 붙들고 이야기 함. 



“내가 싫어? 엉? 그럼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고 해, 자꾸 도망가지 말고. 자꾸 도망가니까 내가 쫓아가고 싶어지잖아!”

“왜? 왜 쫓아오고 싶어지는데?”



그렇게 물어보는 지민이한테 할 말이 없었음. 하긴 도망가면 냅둬도 되는데 굳이 쫓아가서 상처받는 이유를 지기도 모름. 태형이가 망충한 얼굴로 ‘...그러게?’ 하고 말하자 지민이 태형이를 쳐다보다가 픽 웃음. 



그 순간 네가 너무 예뻐서, 라고 태형이는 생각했음. 그리고 막을 새도 없이 그 생각을 그대로 말로 뱉어버렸고 지민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어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버림. 



‘어째서?!’



멘붕이 온 태형이는 집에 가서 엄빠 얘기하는 거 듣다가 지민이네 엄마아빠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됨. 



하얗고 예뻤던 지민이 엄마를 지민이 아빠가 겁탈했고 그래서 생긴 아이가 지민이였음. 지민이 엄마는 지민이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고 지민이는 ‘니 에미 바닷속 어딘가로 가 버렸다’고 들으며 자랐고, 술에 빠진 아버지에게서 얼굴만 곱상하게 생긴 그년을 닮아 네놈도 팔자 뒤숭숭하게 생겼다는 말을 욕처럼 들으며 자람. 네놈의 새끼는 남자 조심하라고. 



그런 상태에서 태형이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은 게 지민이한테는 충격이었던 것.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더 이상함. 오히려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뛰어서 지민이는 침대에서 이불을 안고 제 심장 뛰는 소리를 가만히 들음. 



‘나 아픈 거야? 괜찮은 거야? …괜찮은 거야?’



근데 태형이가 자꾸 지민이네 집에 찾아옴. 지민아 놀자. 지민아 나랑 숙제해. 지민아 나랑 해변 걸을래? 지민아, 지민아. 



그리고 김씨네 집 아들이 지민이네 집에 빈번하게 들락거린다는 말이 지민이 아버지의 귀에도 들어감. 그게 육지에서 온 외지인이란 말에 지민이네 아버지는 더 화가 남. 그 외지인에 대한 묘한 불안감과 분노가 쌓여 있는 사람이라서. 지민이 어머니가 외지인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고 집에 갔더니 지민이랑 마당에서 놀고 있는 태형이를 발견함. 



지민이 아버지는 다짜고짜 태형이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서 집 밖으로 태형이를 쫓아냄. 지민이가 아빠 왜 그래! 아빠 하지마! 아빠! 하고 말려보지만 뱃사람인 아버지를 막을 수 있는 힘일 리가 없음. 



“다시는 저 새끼 만나지 마! 너 저 새끼 만날 거면 내일부터 학교 나가지 마! 한 번만 더 저 새끼 집으로 끌어들였다간 너부터 작살날 줄 알아!”



대문 밖에 있는 태형이까지 들으라는 듯 소리를 지른 아버지는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감. 지민이는 대문 밖의 태형이가 걱정되면서도 아빠가 무서워서 차마 밖을 내다보지도 못함. 태형이는 담장 밖에 서서 오랫동안 지민이를 기다리다가 자기 집으로 감. 



그리고 지민이는 정말 학교에 나오지 않음. 



태형이는 담장 밖에서 지민이를 기다리다가 지민이 아빠한테 들켜서 매를 맞고 쫓겨날 때도 있었음. 욕을 애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지민이는 그걸 자기 방 안에서 다 듣고 있으면서 떨면서 불안해 함. 그냥... 모든 게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지민이. 



어느 날, 아빠가 먼 바다로 나간다고 한 날. 지민이는 담장 밖에서 태형이를 기다림. 매일매일 오니까 오늘도 올 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태형인 와줬음. 



“지민아! 엄청 보고 싶었어! 엄~청 엄청 엄청 엄~~청!”



네모진 웃음을 짓는 태형이에게 지민이는 이제 오지 말라고 함. 자긴 모두 무섭고 지쳤으니까, 이제 오지 말라고. 



태형이는 지민이를 만나면 지민이도 자기처럼 말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서운했는데,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어쨌든 만나지 말자고 하니까 그건 정말정말 싫어서 일단 지민이를 달래 보려고 함. 



“지민아, 그러지 말고 우리 오늘처럼만 잠깐만 만나면 안 돼? 잠깐만. 응?”

“왜 그래야 하는데?”

“응?”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만나야 하는데?”



지민이의 말에 태형이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함. 



“널 보면 좋아. 너를 만나는 게 기다려져. 널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게 설레. 하나도 안 길게 느껴져. 그렇게 너를 만나면 그 모든 게 잊혀질 정도로 좋아. 무슨 얘기를 하든 너랑 얘기하면 즐거워. 그리고 헤어지면 다음에 또 너를 꼭 만나고 싶어져.”

“네가 좋은가봐.”

“그러니까 우리 만나. 응?”



태형이의 해맑은 말에 지민이는 또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걸 느낌. 지난 번 그 침대 안에서처럼. 지민이의 표정을 본 태형이는 씨익 웃으며 너도 싫지는 않은 거지? 하고 물어봄. 지민이가 그렇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태형이 머리채가 지민이 아버지의 손에 의해 우악스럽게 잡혀 뒤로 젖혀짐. 



“너 이놈 새끼! 아직도 내 새끼 잡아 먹을라고 들락거리냐, 이 육시럴 새끼!”

“아악!”

“아빠! 안 돼, 아빠! 놔줘, 태형이 놔줘!”



지민이 아버지는 태형이 머리를 붙든 채 태형이를 두들겨 팰 만한 뭔가를 찾다가 방심한 사이 태형이를 놓침. 손아귀에서 잽싸게 빠져나온 태형이가 지민이 손을 붙들고 도망치기 시작함. 



달려야 하는데 지민이가 얼마 못 달리고 헐떡거림. 그제야 태형이는 생각났음. 지민이 심장이 좋지 않은 게. 뒤에서 지민이 아버지는 계속 쫓아오고 길은 오르막이고 태형이는 지민이 때문에 빠르게 달릴 수 없고. 그러나 멈출 수 없는 태형이를 따라가던 지민이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내림.



“넌, 도망 가… 어서.”



아파서 숨을 끅끅대면서도 지민이는 태형이에게 말하고 태형이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도망침. 땅에 쓰러진 지민이는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도 거의 못 쉬고 땅바닥에서 발버둥과 몸부림을 침. ‘아파. 아빠, 나 흐읍, 너무 아파…’ 지민이 아빠는 지민이 얼굴색이 변해가는 걸 보고 덜컥 겁이 나 마을 보건소로 지민이를 안고 달려감. 



그리고 그대로 밤중에 큰 병원의 수술실로 실려간 지민이. 



태형이는 마을에 울리는 앰뷸런스 소리에 그게 지민이일까봐 하룻밤 내내 마음 졸이다, 다음날 엄빠 대화를 듣고 실려간 게 확실하게 지민이였음을 알게 됨.



그 후로 죄책감에 시달리던 태형이는 밥도 잘 안 먹고 계속 지민이네 집만 기웃댐. 누구 발소리만 들려도 지민이 아빠일까봐 담장 밑으로 숨었다가 빼꼼 눈만 내밀어서 아무도 아니면 다시 튀어나와서 지민이 기다림.



+)
어느 밤 자기 전에 핸드폰 들고 있다가 '일본영화 같은 세카츄 감성의 글을 써보고 싶따!' 하고 막 두들긴 썰인데 언젠가 다시 보고 뒤를 쓰고 싶어질지도 몰라서 올려봅니다. 썰엔 참 재주가 없어서... 쓰고 보니 별로 일본영화 감성은 없는 것 같네요 ㅠㅠ 그것보단 영화 순정에 가까운 듯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