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슙 : DADDY (完)

[국슙] DADDY 13.

몽블랑11 2016. 11. 25. 21:17

[국슙] DADDY 13.

w.몽블랑



*



도로를 달리던 윤기의 차가 도로변에 급하게 멈춰섰다. 방향등 표시도 없이 차로를 바꾸고 길 한 쪽에 급하게 서고 나서야 주의등을 켜자 지나가는 차들에게서 곱지 않은 시선과 말들이 날아왔지만 윤기는 그대로 핸들에 팔을 대고 이마를 묻었다.



쓰러졌다고 했다. 그렇게 건강했던 정국이, 쓰러졌다고. 태형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른다. 이런 기분은 정국이 어렸을 때 한밤중에 고열을 냈던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보건실에 창백한 얼굴로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던 정국을 보고 윤기는 혼이 나갈 뻔 했다. 마치 정국이 큰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주저앉을 뻔했다. 별 문제는 없다는 말과, 만약을 위해 그래도 진찰을 받아보시라는 보건교사의 말이 없었다면 아마 윤기는 분명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윤기에게 치명타였던 건 차로 정국을 옮기고 나서 들었던 태형의 말이었다.



‘정국이 얘기 한 번만 물어봐 주시면 안 돼요?’



태형이 뭘 알고 그런건지 모르고 그런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은 윤기에게 마치 탓하는 것처럼 들렸다. 정국이 얘기 들어봐 주시면 안 돼요? 왜 정국이 얘기 안 들어 주세요? 왜 자꾸 피하세요?



그렇게… 두려우세요?



태형의 목소리가 윙윙거리며 윤기의 주변을 맴돈다. 투명한 물속에 떨어뜨린 잉크처럼 번지는 감정에 윤기는 제 주먹을 꽉 쥐었다. 제 두려움에 아이가 아파하고 있었다. 정국은 제 외면에 마음을 다치다 다치다 못해 이제 그 상처가 몸으로까지 나타난 것 같았다.



그러려니 하고, 한 때의 열병이려니 하고, 보지 않으면 없어지려니 하고, 그렇게 곁에 있는 정국을 못 본 척한 결과였다. 보고자 하면, 듣고자 하면 손닿을 데 있었던 정국의 마음을, 들을 용기도 볼 용기도 없었던 제 마음의 탓이었다. 다가가기조차 겁을 냈던 제 자신의 탓.



아파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아파할 줄은 몰랐다는, 그런 책임감 없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같은 원망도 윤기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제가 정국에게 허락한 것이 조금도 없었다. 저 어리고 여린 아이한테 제가 준 것이라곤 외면뿐이었고, 허락한 것이라곤 침묵뿐이었다.



뜨겁고 척척해지는 눈가조차 윤기는 원망스러웠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데 눈물은 뻔뻔하게도 흘러내렸다. 눈을 쓰라릴 만큼 세게 소매에 부볐다.



“…대디.”



조수석에서 들리는 정국의 목소리에 놀란 윤기가 고개를 들었다. 조수석의 정국이 쉽게 초점이 잡히지 않는 듯 눈을 찡그리며 떴다 감았다 했다. 보건실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안색은 나아보였지만 여전히 창백했고 기운이 없었다.



“정국아, 괜찮아?”

“대디, 울어요?”



서로에게 신경 쓰이는 것만 물으며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고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젖어 있는 윤기의 얼굴을 보자 밀려오는 죄책감에 안타까워 정국이 손을 뻗었다.



“왜 울어요, 대디…. 많이 놀랐어요?”

“…당연하지.”

“어지럽다가 몸이 너무 무거워서 땅으로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어요. 처음 쓰러져 봐서 신기했어요.”



정국은 웃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윤기는 그게 안쓰러운 만큼 화가 났다.



“지금 네가 웃을 때야?”

“…대디, 화났어요?”



정국이 눈치를 본다. 그냥, 좀 피곤했나봐요. 하고 가볍게 넘기려는 정국의 말에 윤기는 결국 폭발하듯 화를 내고 말았다.



“네가 어디서 조금 피곤한 일로 쓰러질 나이야? 그럴 체력이야? 얼마나 힘들었으면 체육 시간에 뛰다 쓰러지냐고. 왜, 왜 그렇게 될 때까지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하는데.”

“대디….”

“난 너한테 뭐야. 너한테 민윤기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이제 나를 부모로도 생각 안 해? 좋아한다면 다야? 좋아한다고 말하고 피해버리면 그만이야? 내가 피한다고 너까지 피하고, 그러다 우리 안 보면 이제 그만이냐고.”

“…….”

“네가 이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둔 내가 지금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알아?!”



정국은 입을 다물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마는 윤기의 표정이 너무 아팠다. 언제나 강한 척하던 그였는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만큼 자신이 몰아붙였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심장이 죄여온다. 정국은 기운 없는 손을 뻗어 촉촉이 젖은 윤기의 볼을 닦아냈다.



“…미안해요. 숨기는 게 제일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

“이제 정말 내가 다 버릴게요. 안 좋아할게요.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울지 마요. 대디가 울면 나는….”

“…….”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속눈썹이 깊게 드리운 정국의 눈동자에 깊은 심연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은 정국을 좀먹고 제 마음의 본질처럼 파고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보단 제가 아픈 게 나았다. 그건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라도 하니까.



일순 흐리게 부풀었던 시야가 맑아지면서 윤기가 눈에 들어온다. 윤기는 똑바로 정국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 정국은 지친 얼굴로 윤기와 시선을 맞췄다. 괜찮다고 웃고 싶었지만, 웃어 보여주고 싶었지만, 제 입으로 뱉어버린 끝이 입가에 매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무거워 입꼬리를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지친 몸엔 그럴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부드럽게 윤기의 입술이 정국의 입가에 닿기 전까진, 분명 그랬다.



키스라기에도 뭐한 가벼운 접촉이 지나갔다. 정국은 눈을 깜빡였다. 꿈같았다. 윤기의 입술이 닿았던 곳엔 뭔가 흔적이라도 남아있을 것 같아 손으로 쓸어보았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나한테 뽀뽀해줬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데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ㄷ, 대디, 나한테 뭐…. 대디…? 하는 얼빠진 정국의 반응에도 윤기는 웃지 않았다. 그는 가볍지 않게 말했다.



“나는 아직 아니야.”



정국의 심장이 다시 쿵 떨어졌다. 뭐가 아직 아니라는 걸까. 자신에게서 아직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자신을 좋아할 수 없다는 걸까. 놀이동산에서도 이런 롤러코스터는 타본 적이 없었다. 정국은 긴장에 굳은 몸을 하고 침을 삼켰다. 정직한 윤기의 시선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너에게 아빠로서만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그렇게 인정하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어.”

“…….”

“이제 외면하지 않을게. 네 마음 있는 그대로 바라볼게. 내가 아플 때 옆자리를 내어줄게.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내버려두지 않을게. 네가 힘을 때 네 곁에 지금보다 더 가까이로 다가갈게.”

“…….”

“해 보자, 정국아.”



윤기의 말이 끝나고 정국은 멍한 얼굴로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버벅거리며 겨우 꺼낸 말은 ‘ㅁ, 뭘요?’ 였다.



“해… 보자구요…? 뭘요…?”

“사귀어 보자고.”

“대, 대디랑 내가요?”

“어.”



정국은 기가 막힌 듯 허, 하고 한숨 같은 웃음을 뱉더니 웃기 시작했다. 나요? 하하하, 대디랑요? 나랑 대디랑 사귀어요? 하고 소리내어 웃던 정국은 어느 순간 윽, 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말이 없던 정국에게서 흐읍, 하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떨어지고 나서야, 윤기는 정국이 울고 있음을 알았다. 울음이 섞인 정국의 젖은 숨소리가 윤기의 가슴께를 쿡 찔렀다.



“정국아.”

“미안해요, 대디…. 미안한데, 나 너무 좋아서… 금방 그칠게요. 당황스럽게 해서 미안해요, 나….”



정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 윤기는 천천히 정국을 안았다. 어느 새 많이 큰 키가, 넓게 자란 어깨가 품에 안겼지만,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로 적시는 정국이 윤기에게는 아직도 너무나 어린 것 같아서, 윤기는 끊임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등을 토닥이자 정국은 윤기의 어깨에 작게 눈가를 부볐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대디는,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죠. 대디랑 헤어지던 날 얼마나 슬펐는지 모르죠.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슬펐는지, 그런데도 얼마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는지 모르죠.”

“…미안, 미안해.”

“알아달라고 하는 말 아니에요. 그냥 너무 좋아서 그래요. 그게 다 보상 받은 거 같아서, 그래서 눈물이 안 멈춰져요.”



멈추고 싶은데… 아. 하고는 제 말과는 반대로 윤기의 품으로 파고들다 이내 아이 같이 엉엉 우는 정국을 윤기가 토닥였다. 제 할 수 있는 최대한 다정하게 토닥이고 싶었지만 정국이 울음을 좀처럼 그치지 못해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정국이 서운하게 느꼈던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