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슙 : DADDY (完)

[국슙] DADDY 19.

몽블랑11 2016. 11. 25. 21:19

[국슙] DADDY 19.

w.몽블랑



*



어쩌면 날벼락이었다.



“정국아, 인사드려. 네 이모 되는 분이셔.”



정국은 학교에서 돌아와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여인을 보았다. 그 뒤로 소파에 앉아있는 윤기도 보였다. 아직 대디가 퇴근할 시간이 아닌데? 하고 정국이 갸웃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정국을 보자마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라 자신의 입을 막고 고개를 떨궜다. 정국의 놀란 시선이 그리로 옮겨지고, 귓가로는 윤기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저 목소리가.



윤기가 제게 한 말에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정국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여인은 정국이 굳어있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정국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윤기의 말이 아니라도, 조금만 관찰하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엄마의 얼굴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지나가는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도 분명 정국은 그녀를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 이모…. 이모예요? 정말…?”



정국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조심스레 팔을 벌리자 정국이 홀린 듯 걸어와 그녀를 안았다. 정말, 우리 이모예요? 하는 울먹거림이 그녀의 어깨에 쏟아져 내리고 그녀는 목이 메어 고개만 쉼없이 끄덕거렸다. 미안해. 이모가 너무 늦게 찾았지. 그동안 많이 외로웠지. 그녀의 말에 정국은 서럽게 울었다. 훌쩍 커버린 정국은 그녀의 품에선 마치 그저 그 때의 아이만 같았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좀처럼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녀에게 정국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정국을 찾겠다고 전국을 뒤진 지 벌써 몇 년째인지 몰랐다. 해외에 있다가 듣게 된 동생의 죽음 후 쉽게도 연락이 끊겨버린, 차라리 사라져 버린 것에 가까운 조카의 소식을 알기는 생각보다 너무나 어려웠다. 마치 누가 숨겨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그녀에게 ‘우연치 않게’ 소식이 들려온 것은 얼마 전이었다. 그녀가 찾고 있는 아이와 똑같은 정보의 아이가 어느 대학 무슨 과에 재학 중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찾는 것을 도와주던 시민 단체는 아이의 보호자와 연락을 이어주었고, 그녀는 오늘에서야 정국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정국의 울음이 잦아들자 그녀는 정국을 품에서 내고는 얼굴을 살폈다. 아직도 멈추지 못한 울음 끝에 정국은 등을 들썩이며 제 눈의 눈물을 닦아냈다. 숨을 불규칙적으로 토해내다 딸꾹질이 들린 정국의 등을 그녀가 따듯한 손길로 토닥였다. 그저 어린아이만 같은 정국의 모습에 그녀는 한층 더 마음이 아팠다.



정국을 한없이 쓰다듬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윤기가 서 있었다. 윤기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고, 그녀는 윤기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조카를 그 동안 잘 돌봐 주셨다고 들었어요.”

“아닙니다. 정국이가 그간 잘 커줘서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윤기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정국이 고개를 들었다. 윤기는 예를 다해 그녀에게 대답을 건네고 있었다.



“매부와 친한 친구였다고 하시던데요.”

“…네. 형님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것은 맞습니다.”

“그동안 감사해서 어떡하죠. 제가 정국이를 너무 늦게 찾아서….”

“지금이라도 연락이 닿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 정국이를 데려갈 수 있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정국의 눈이 커졌다. 윤기의 시선이 슬핏 정국에게로 닿았다가 다시 조용히 그녀를 향해 돌아왔다.



“…그건, 정국이가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국이도 혼자 나가살게 되는 게 처음이라서요.”



윤기와 여인의 시선이 한꺼번에 정국에게로 향했다. 정국이 말을 못 잇고 눈만 깜빡이자 한참 정국의 대답을 기다리던 그녀가, 대답을 찾지 못한 정국의 긴 침묵에 역시 너무 갑작스럽겠죠, 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윤기가 여인을 달랬다.



“아뇨, 저도 이제 정국이가 독립해도 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혼자서도 잘할 거예요. 이젠 이모도 있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기가 못내 웃는 표정으로 여인에게 건넨 말에 정국은 윤기에게 고정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여인은 윤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윤기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정리했다.



“일단은 갑자기 이모님과 연락이 된 거라 제가 정국이랑 얘기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오늘은 저와 정국이가 대화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일단… 이건 제 연락처고, 제가 하루이틀 안으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윤기는 제 명함을 여인에게 건네며 명함 뒷장에 정국의 번호도 적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이들에게 자신의 잃어버린 가족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을 건네고 싶었다. 정국이 자신의 생각보다 너무나 잘 커주었을 뿐더러, 지금까지 정국을 키워줬다는 민윤기라는 사람 또한 신뢰감 가는 말투와 상냥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집을 벗어나기 전 자신의 동생과 똑닮은 정국의 얼굴을 보고 한 번 더 눈물짓다가 금방 다시 보자, 하는 말을 정국에게 남기고는 그들의 집을 벗어났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모두가 나가고 둘만 남은 집안에 차가운 정국의 말이 둘 사이의 무거운 침묵을 갈랐다.



“뭐가.”

“나 혼자 산다면서요.”

“뭐가 잘못됐는데.”

“왜 또 갑자기 그래요.”

“도대체 뭐가.”

“대디는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요!”



윤기의 평온한 목소리에 정국이 결국 소리쳤다.



“친척들만 나타나면 왜 자꾸 나 쫓아내는데요? 지난번 작은 아버지 때 내가 어땠는지 몰라서 그래요? 내가 성인 돼서도 집 나가야 좋겠어요? 아직도 몰라요?”

“아니, 알아. 그런데 이번엔 달라.”

“뭐가 다른데요.”

“이번엔 이모님께서 너를 데려가길 원하셔. 이모님은 저번 그 사람 같지 않을 거야. 몇 년 간 널 찾아다녔는지 모르,”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지금!”



정국이 답답한 듯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지금 대디랑, 그냥 부모자식 관계가 아니잖아요. 우리 그냥 떨어져 살자는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그런 얘기가 아니면.”

“…….”

“그럼 무슨 얘긴데.”



윤기의 건조한 말투에 정국이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윤기의 태연한 반응은 제 자신이 제대로 파악한 건지 착각인 건지 확신하지 못하게 했다.



“지금 우리 헤어지잔 얘기…잖아요.”



하아. 한숨을 내쉰 윤기가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윤기는 많이 피곤해 보였다.



“확대 해석하지 마. 그냥 우리 이제 따로 살자는 얘기야.”

“…….”

“너도 성인이고, 언제까지 내가 데리고 살 수는 없잖아. 너한테도 이 세상에 피붙이가 있는 편이 낫고. …이모님이라면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많이 찾아봤어. 지난번 같은 일 없을 거야.”

“…….”

“그것 외에도 유산문제나 뭐 그런 것들이 지금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라서… 이런저런 문제들을 끝낼 때가 왔다고 보면 돼.”

“정말로,”



가만히 듣고 있던 정국이 윤기의 말 중간에 끼어들었다.



“정말로 그게 다라면.”

“…….”

“지금 키스해줘요.”



지금, 지금 당장이요. 우리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증명해 줘요. 정국의 말에 윤기가 정국에게로 한 걸음 다가선다. 천천히 윤기가 정국에게 다가가고, 반걸음쯤 남았을 때 정국은 윤기의 어깨를 끌어당겨 뒷목을 안고 급하게 입을 맞췄다. 정국의 혀가 익숙하게 찾아들고 윤기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숨결이 섞이는데도 정국은 윤기를 품에 더 꽉 끌어안았다.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불안해 미칠 거 같아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오래된 일 같아요. 나는 대디를 좋아하고 나서 한 번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어요.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요. 왜 나를 미칠 것 같이 만들어요. 나는 대디의 곁에서 함께 쉴 자리가 되고 싶었는데, 우린 그렇게는 안 돼요?



정말 이게 다가 맞아요?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요, 대디.



*



+)


이모는 좋은 사람이 맞지만 그걸로 자신과 윤기 사이에 무언가 변해야 한다면 피붙이 같은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꾸기지만 윤기는 생각이 다릅니다. 윤기는 정국의 평생을 생각해 봤을 때 분명 마음 붙일 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정국이 연인으로 돌아선 이상 자신은 평생 정국의 기댈 언덕이 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윤기는 연인이 되기로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마음을 굳혔습니다. 꾸기는 전혀 감도 못 잡고 있지만.


윤기도 꾸기도 자신이 더 맞다고 생각해요.


윤기는 지난번 작은 아버지에게 보낼 때와는 또 다른 생각입니다. 그땐 본인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꾸기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제 잘못이라 생각도 했고, 꾸기와 깊은 관계가 되는 것에 대해 확신도 없었고 불안해 해서 보냈던 거예요.


이번엔 다릅니다. 이모에 대한 뒷조사도 충분히 했고 이 사람이 꾸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인가, 정국이가 평생에 걸쳐 부모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아버지에게 부탁해 재산부터 성격, 주위의 인맥까지 철두철미하게 알아본 상태입니다.


그리고 꾸기에게 독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국이가 자란 그 집에서 두 사람이 계속 살 수는 없다고요. 정국이 덜 아프려면요.


+)

생각이 두서없이 떠올라서 끝에 정리를 하게 되네요 ^ㅁ^ ....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