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슙] DADDY 25.
[국슙] DADDY 25.
w.몽블랑
*
제 집으로 데려와 침대에 윤기를 눕힌 석진이 그제야 생각난 듯 아씨, 하고 제 머리를 흩뜨렸다.
“나 진짜 어린애랑 사귀는데, 말도 못했네!”
오늘의 고민상담자는 나였는데. 석진은 뭔가 억울한 듯 고민하더니 이내 잠든 윤기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조곤조곤 옆에서 잠든 윤기를 향해 자장가 같은 혼잣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름은 김태형인데, 어… 나 회사 때려치고 레스토랑 하잖아. 그런데 거기에 손님으로 온 거야. 문 열고 들어오는데… 완전 뒤에 후광이…. 그 tv에 나왔던 차문남? 걔보다 예쁨. 그래서 내가 엄청 추근덕거렸는데, 나를 안 싫어하고 걔가 막 웃는 거야. 되게 예쁘게. 그래서 나는 우리가 되게 쉽게 사귈 줄 알았어.
근데 원래 사귀던 애가 있대. 걔 이름이 박지민인가. 그런데 얼마 전에 실제로 처음 만났거든. 근데 걔도 되게 귀엽게 생겼더라. 물론 나도 귀엽고 예쁘잖아. 거기다 나는 돈도 많아. 그런데 나이도 많아. 그런데 난 잘생겼으니까 괜찮아.
…암튼 원래 사귀던 사람 못 잊었다고, 나한테 안 되겠다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괜찮다, 내가 기다리겠다, 그랬다? 그땐 그냥 시간이 해결해줄 줄 알았지. 처음엔 튕기는 건가 싶기도 했고.
그렇게 그냥 패기에 그랬는데, 지민인가 걔 보는 태형이 눈이…. 눈을 못 떼. 그냥 아주 붙박여 있더라고. 내 손까지 놓고 걔 다친 거 보러 가는데, 뭔가 되게 억울한 거야!
그런데 어떡하냐. 내가 기다리겠다고 했잖아. 내가, 내 입으로. 그래서 그냥 지켜봤지. 우울해 하는 태형이까지 챙겨서 내가 집으로 왔다.
사실 엄청 속상했다, 나….
야, 이쯤이면 나 포기해야 되는 게 정상 아니냐? 그런데 왜 더 포기하기가 싫지? 아주 호구인가봐. 아니면 얼빠든지. 태형이 얼굴에 완전 맛이 간 거지. 첫눈에. 완전 표로롱…. 그런데 태형이 얼굴이라면 그럴 만해. 어, 인정. 거기다 애도 착하고 진국이야. 그래서 포기가 안 되나?
예전 연인에게 질 수는 없지. 그치 않냐? 그 어린애한테 뺏기긴 좀 억울해. 그래서 내가 열심히 노력을 할 것이다. 민윤기 너는 옆에서 응원이나 좀 해줘라. 알았냐?”
윤기는 듣는지 못 듣는지 잠이 든 숨소리만 대답처럼 색색 내뱉었다. 석진은 그런 윤기를 쳐다보다 혀를 쯧쯧 차고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에휴 내가 이 밤중에 뭐하는 거냐, 너한테. 잠이나 자야지. 윤기가 자는 방문을 조용히 닫은 석진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그의 집 거실엔 푸른 달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
눈이 부셨다. 깔끔한 쓰리피스의 정장을 입고 탈의실 커튼을 걷고 나타난 정국은 환한 조명 아래 아름답게 빛났다. 봐둔 정장 세 벌 모두가 정국에게 맞춘 듯 잘 어울렸지만, 특히 마지막 정장은 정국에게 맞춤인 듯 했다.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국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행커치프를 꺼냈다. 행커치프는 윤기의 손에서 곱게 모양을 잡았고 그것을 윤기는 정국의 가슴주머니에 조심스레 꽂아주었다. 다시 한 번 행커치프의 모양을 잡은 윤기는 천천히 손을 떼곤 마른 침을 삼킨 후에 힘겹게 말했다.
“…잘 어울린다, 정국아.”
정국은 그런 윤기의 말에 시선을 떨구며 쓰게 웃었다.
“고마워요, 대디.”
정국의 말을 들은 웨딩샵 직원들이 아드님이세요? 멋지시네요. 하고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분명 윤기와 정국이 부자 관계라고 납득하기엔 자신들도 마음속에 품는 의문이 많겠지만, 그들은 슬기롭게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 정장 오늘 가져갈 수 있다고 하셨죠.”
“네.”
“포장해 주세요.”
직원은 알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탈의하실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의 말에 잠시 잠깐 피곤에 지친 윤기의 눈동자와 빛을 잃은 정국의 시선이 공중에서 만났다가, 그런 적도 없었던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국은 순순히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커튼이 닫히자 윤기는 앉아있던 소파에 천천히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얼핏 설잠에 들면 정국이 찾아오거나 가위에 눌렸다. 결혼식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몇 개월 동안 윤기는 잠을 제대로 잔 기억이 없었다.
정국이 나오자 윤기는 돈을 지불하고 정국과 함께 웨딩샵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속도가 빠른지 몸이 뜨는 것 같다고 느끼던 순간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의식을 잠시 놓았다.
힘을 잃고 쓰러지는 몸을 정국이 잡아챘고, 윤기는 몸이 잡히는 충격에 다시 의식을 찾고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건 정국의 놀란 표정이었다. 윤기는 무거운 머리를 짚고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어 일어났다.
“…미안해.”
“…….”
“미안,”
“내 앞에서,”
“…….”
“자꾸 약한 모습 보이지 말아요.”
정국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윤기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몸에 힘을 주어 완전히 몸을 곧게 폈다.
“응. 그럴게.”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열리자 두 사람에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고, 정국과 윤기는 웨딩샵 건물을 벗어나 각자의 길을 걸어 나갔다.
*
그리고 그날 밤, 정국은 윤기를 껴안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낮에 꾹꾹 억눌렀던 감정들이 밤만 되면 정국을 휘감고 도는 것 같았다. 예민해진 신경줄이 가느다랗게 늘어져 그것이 윤기의 행동 하나하나에 뚝, 뚝, 쉽게도 끊어졌다.
자신더러 결혼식에 꼭 오라는 건지, 윤기는 오늘 정국의 정장을 맞춰 주었다. 미리 옷을 봐뒀던 듯 직원들은 정국의 정장을 꺼내와 입혀주었고, 그 모두를 하나하나 유심히 지켜보던 윤기는 그중 마지막 옷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 행커치프. 그 비단 천을 곱게 접어 소중하게 다루던 윤기의 하얀 손. 행커치프를 가슴주머니에 조심스럽게 꽂아주던 그 손길. 윤기는 자신의 결혼식에 정국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나를 소중한 사람처럼 대해요. 왜 그렇게 굴어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해주면, 그러면 잊기가 쉬울 텐데. 내 품에 있는 대디는 이제 내 사람이 아닌데, 자꾸 착각하잖아요.
이렇게 내 품에 있는데. 내 손에 잡히는데. 왜 대디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에요?
물어보지도 못할 질문을 마음에 담아 누른 정국이 하나밖에 모르는 짐승처럼 허릿짓을 하면, 윤기는 그 아래에서 버티다가,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다가, 다시 잃었다.
정국이 행위를 끝낼 때쯤, 끝끝내 의식을 잃어버리고 침대 위로 늘어진 윤기를 돌려 눕혀 얼굴을 마주본 정국이 이번엔 윤기의 몸 위로 몸을 겹치고 땀에 젖은 그의 앞머리를 넘겨주며 이마에 키스했다. 소중하게 입을 맞추는 정국의 숨이 떨리며 토해졌다.
윤기와 이마를 맞댄다. 윤기의 조금은 낮은 체온이 닿은 이마를 통해 전해졌다. 코끝을 맞추자 윤기가 천천히 눈을 떴다. 땀과 눈물에 젖은 윤기의 눈동자가 정국의 눈앞에서 일렁였다. 정국은 그런 윤기의 눈을 바라보다 다시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윤기가 다시 눈을 감았고 두 사람의 혀가 질척하고도 애절하게 얽혔다. 서로가 몇 번이고 다시 다가가고 다시 다가갔다.
입술을 떼자 윤기는 정국의 입가에 묻은 타액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언제 봐도 아이 같은 얼굴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정국이 다 큰 것도 같아 윤기는 살풋 웃었다.
“…정국아.”
“네.”
“내 말… 기억 나?”
윤기의 말에 정국이 대답이 없다. 어떤 말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게 뻔했다. 윤기가 기억 안 나? 하고 묻자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윤기가 픽 웃었다.
그걸로도 좋았다. 기억이 안 나는 걸로도 괜찮았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윤기는 정국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정국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잠이 들었다. 윤기는 그런 정국의 품에서 현실을 잊었다. 이 모든 게 잘못되었다 해도, 제 모든 모럴이 사라져도, 윤기는 정국을 놓고 싶지가 않았다.
*
나도 많이 사랑해. 잊지 마. 전정국, 나도 너 사랑해.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 나를 오해하지 마. 알겠어…?
*
+)
꾸기 정장으로 생각했던 랄프 로렌 정장
꾸기 왠지 이런 거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런데 입은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ㅜㅜ
+) 댓글 남겨주신 대디 파이팅 님 감사합니당... 흐븝 ㅜㅜ♥
그리고 공감 눌러주신 분들도 ㅜㅜ 감사해여 ㅜㅜ 복 마니 받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