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9.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9.
“민 형사.”
“…….”
“민 형사.”
“…….”
“민윤기!”
“…예?”
파티션을 살짝 넘길 정도로 차오른 서류와 외장하드 속에서 빼꼼히 눈만 보이며 윤기가 고개를 든다. 그의 핏발 선 눈을 보던 선배 형사인 김 형사는 혀를 쯧쯧 차며 윤기를 밖으로 불렀다.
“커피 한 잔 하자.”
“아, 네.”
김 형사의 말에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벌써 며칠째 자료에 파묻혀 자료를 보고 또 보는 윤기를 보다 못한 그가 불러낸 것이었다. 서 입구에 마련된 4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두 잔 뽑은 그는 하나는 윤기에게 그리고 다시 뽑은 한 잔은 자신의 손에 들었다. 진지한 얼굴로 ‘네 건 고급 커피다.’ 하면서 종이컵을 건네는 그의 말에 윤기는 힘없이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서를 나오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뒤로 가자.’ 하며 윤기를 서 뒤쪽의 한산한 주차장으로 이끈다. 윤기는 말없이 그를 따라가 주차장 구석에 섰다. 김 형사는 윤기의 딸이 실종된 때문인지 조심스레 서두를 꺼냈다.
“뭐 새로 좀 나온 건 있고?”
“…아니요.”
“그래. 네가 안 뒤져 본 게 없으니까.”
“…….”
“민 형사.”
“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김 형사의 말에 윤기는 제가 어디서부터 사건을 뒤져왔는지 생각한다. 지민과 다인이 사라진 그 시점부터 샅샅이 기록을 뒤져왔던 자신. 그때부터의 기록이라면 윤기는 안 뒤진 게 없었다. 안전가옥 근방 2km 내의 CCTV 기록도 모두 살폈고 지민에 대한 기록하며 태형에 대한 기록까지.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처음부터라고 말씀하시면 어디서부터….”
“박지민이 체포되던 그 시점 말이야. 그 뭔가 이상하지 않냐. 우리가 거길 칠 때 항구에서 아예 기다렸잖아. 몇 시간 진을 치니까 진짜 그 새끼들이 거래하려고 나타났잖아.”
“그랬죠.”
“그런데 이걸 우리가 어디서 정보를 얻었냐고. 난 거기서부터 이상하단 말이지.”
그의 말에 윤기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다.
“다른 선배들이 어디서 들으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가 고개를 젓는다.
“제보 전화야.”
“예?”
“제보 전화라고. 내가 받았어. 젊은 남자 목소리였는데, 자기가 들었다면서 그 조직이 거기서 거래가 있을 거니까 꼭 가라고.”
처음 듣는 얘기였다. 윤기의 동공이 커지자 그는 이제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미안한 듯 담배를 쥔 손가락으로 코를 슥 문댄다.
“아니 번호도 공중전화 번호고, 믿을 수가 있나. 그래서 맨 처음엔 뭔 미친놈인가 했는데, 어느 항구 뭔 구역 섹션까지 자세하게도 불더라. 뭐 인원은 몇 명쯤이고, 그 조직 보스는 누구고.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거긴 우리가 계속 주시하던 데 아니냐. 그 전에 왜 마약 건이 있었잖아.”
“예, 그쵸.”
“거기다 보스 이름을 딱 듣는데 이게 그냥 헛소리가 아니겠다 싶더라고. 너도 알다시피 걔가 그렇게 저 바닥에서 유명하진 않잖냐, 죽은 사람한테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근데 아무튼 걔 이름을 꺼내니까 미친 척 하고 팀장님한테 말씀 드렸단 말이야. 그러니까 팀장님이 경찰 쪽 병력 지원 받아서 거기 대기하라 그러시더라고.”
한 통의 제보 전화. 거기서 시작된 지민의 체포. 잊고 있었지만, 사건의 시작은 사실 그 항구에서였다. 왜 거길 잊고 있었을까. 윤기는 제 머리를 쓸어 올린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야.”
“…….”
“아예 조직 정보가 통째로 넘어와 있었잖아. 그런데 거기에 박지민은 기록은 없어. 그거 알고 있지.”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 조직의 조직원이라고는 했지만 기록은 전혀 없었다.
“그게 내가 이번에 똘마니들 중에 하나 조서 쓰면서 알게 됐는데 박지민은 원래 그 조직이 아니었다더라.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이래. 그런데 높은 자리로 들어온 건지 어쩐 건지 똘마니들은 얼굴도 잘 모른다 하더라고.”
“그럼 그 전엔 어디 있었답니까.”
“그건 지들도 모르겠다 하던데 그거 하나는 알더라.”
김 형사는 담배의 마지막 모금을 뱉어내고는 땅에 담배를 버리고 발로 짓이기며 윤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항구에서 거래하기로 했던 기업 이름이 BH 인더스트리란다. 조폭이랑 거래하는 기업 이상하지 않냐. 거기다 너 그거 알지. 항구에서 그쪽은 코빼기도 안 비쳤던 거.”
“…….”
“내 12년 형사의 감이 말하기를, BH 파면 요번 사건 분명히 뭐 나온다. 백 퍼센트.”
그리고 김 형사가 뒷주머니에서 꺼내준 건 BH 인더스트리의 약력과 위치, 임원진 소개와 이력이었다. 피곤에 절어든 윤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제 두근거리는 심장이 새로운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
정국은 안경을 빼고 제 피곤한 눈을 감겼다. 지민이 곁으로 오고부터 제 생각처럼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 아니. 집중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정확했다. 모두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지민 때문이었다.
태형에게서 보고 받는 지민의 모습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이럴 거라면 도대체 제가 왜 그 짓을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제 곁에 있는 게 싫어서 꾸몄던 모든 일들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상황은 이전보다 나빠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전엔 그래도 지민이 수면제를 맞아야 잠드는 일은 없었는데.
정국은 무엇을 해야 이전처럼 되돌릴 수 있을지 막막했다. 분명 어릴 땐 예뻐해 주었었는데. …어려지면 예뻐해 줄까. 하던 생각을 하다 저도 어이없단 생각에 비식 웃는다. 그도 자신도 어려지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는데 현재 자신과 지민의 사이는 너무 멀었다.
“하아….”
천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의자를 돌리니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은 이제 부족한 것도 모자란 것도 없는데. 지민만 와주면 그 이상 행복한 것도 없을 텐데. 지민만 와준다면. 그 해맑은 환한 미소로 다시 제게 웃어준다면. …그것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데.
기억 속에만 남은 지민의 웃는 모습에 정국은 다시 제 눈을 감는다.
*
그날 밤이었다. 기력 없이 누워있던 지민의 방문이 열린다. 깜짝 놀란 지민이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바라본다. 문에 서 있던 건 제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던 정국이었다. 그러나 정국의 발걸음이 비틀대는 것이 이상했다. 무언가에 취한 듯한 걸음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곳저곳 벽을 짚으며 걸어 들어오는 정국의 모습에 지민은 점점 침대의 구석으로 제 몸을 피한다. 그러나 침대에서 피해봤자 그저 코너로 몰릴 뿐, 지민은 등에 닿는 벽의 느낌에 마른침을 삼켰다.
“시발, 박지민 어딨어.”
어두운 지민의 방이 잘 보이지 않는 듯 정국은 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기며 욕을 내뱉는다. 정국이 욕하는 걸 처음 본 지민은 그것이 충격인지 움직임을 멈췄다. 방을 둘러보던 정국이 침대의 구석에서 이불을 모두 끌어안은 지민을 발견하고는 한 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다.
“왜. 왜 그러고 있어.”
“…….”
“내가 무서워?”
대답이 없는 지민에 정국이 가까이 다가선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지민의 몸이 점점 크게 떨려왔다. 바들바들 떠는 지민의 턱을 잡아 올린 정국이 지민과 눈을 맞춘다. 정국의 양 쪽 눈동자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지민의 두 눈에 공포가 가득했다. 정국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지민을 내버리듯 놓아버리고는 욕을 짓씹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왜!”
대답이 없던 지민의 흐읍,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불규칙했다. 그 소리에 정국이 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지민의 양 어깨를 꽉 붙든 정국이 지민을 벽으로 밀친 채 제 무게를 실어 누른다. 그 고통이 어깨와 등으로 전해짐에 지민은 신음을 흘렸다. 인상을 찡그리며 눈가에 고여 있던 지민의 눈물이 정국의 손목으로 떨어져 내린다.
“흐으….”
“또 울어. 왜 또 울어. 또 내가 울렸어? 형은 왜 나만 보면 우는데. 도대체 내가 뭘 했다고 울어!”
“…ㅈ국…. 정국아….”
정국은 오랜만에 지민에게서 듣는 제 이름에 입을 다물었다. 그 목소리에 제 마음이 풀어지려는 것도 같았다.
“무서워…. 정국아. 너 무서워….”
“……씨발 좆같은 소리 하네, 이 미친년이.”
정국의 눈엔 이젠 뵈는 게 없었다. 눈이 뒤집힌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지민의 멱살을 잡아 이불에서 끌어올린 정국이 침대의 머리 쪽으로 지민을 던져버린다. 덕분에 머리를 침대 헤드에 부딪힌 지민이 악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끌어안는다. 그런 지민의 몸을 거칠게 뒤집은 정국이 지민의 바지를 손쉽게 끌어내린다. 지민이 손을 쓸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엎드린 채 무릎을 꿇게 만든 뒤 뒤로 들어와 속을 헤집는 억센 손가락에 지민은 저도 모르게 터지는 비명소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
“아악! 흐읏, 윽… 저, 정국, 아, 윽….”
“내가 무서워? 그래 그럼. 무서워해. 그렇게 해.”
“우읍… 하악! 으흐윽… 흐아, 아읏….”
“근데 나도 무서워해야 할 이유는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도 이유 없이 그런 눈길 당하기는 싫잖아. 안 그렇겠어?”
거친 손길이 뜨거운 안을 오가고 고통과 긴장으로 하도 힘을 준 탓에 지민의 허벅지가 벌벌 떨리며 경련하고 있는 것을 정국은 억지로 벌려 제 허리춤에 맞춘다. 정국이 허리띠를 풀고 지퍼를 여는 것에 지민이 제 손을 뻗어 막으려고 허우적거리지만 턱도 없는 거리였다. 지민의 엉덩이를 붙들고 억지로 저를 밀어 넣으려는데 잔뜩 긴장한 그의 뒤가 풀려 있을 리 없었다.
“힘 안 풀어?”
“안 돼, 안… 흐읏, 안 돼….”
“시발, 싫으면 말아.”
“아흐흑…, 억.”
정국은 억지로 제 몸을 밀어 넣었고 지민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고통에 차 신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그의 허리를 붙들고 정국은 그저 제 의지대로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빠져나가려 침대시트만 긁어대는 지민의 손끝이 애처로웠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턱 밑에 차오른 숨만 학학대는 그의 숨결도 정국의 귀에 박힌다. 자꾸만 힘이 빠져 무너지는 지민의 상체에 정국은 그의 허리를 꽉 붙잡은 채 움직인다.
다 지민의 탓이었다. 처음부터 이러려던 건 아니었다. 자신은 지민을 보듬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저 지민만 자신을 봐주면 되었던 건데, 지민은 그 한 가지를 하지 못했다. 그것만 해주면, 그것만 해줬다면,
……자신은 괴물이 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한 사람의 열락과 한 사람이 고통이 공존하던 그때, 방문이 급하게 열린다. 정국이 취해서 지민의 방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태형이었다. 태형은 제 눈에 보이는 광경에 아찔해졌다. 참고 참던 정국이 터진 모양이었다. 분명 저의 보스는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게 뻔했다. 지금이라도 멈추는 게 좋았다. 태형이 정국과 지민을 향해 다가가려 한 발짝을 떼었을 때였다.
“거기 서요.”
정국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우뚝 멈춰선 태형에 정국이 땀에 젖은 자신의 이마의 머리를 넘긴다. 정국은 태형을 바라보지 않았지만, 태형은 정국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붙박이처럼 서 있었다.
“어차피 늦었어. 그냥 가요.”
“…….”
“가.”
다시 제 몸짓을 이어가는 정국에 태형이 결국 뒷걸음질로 방의 입구를 향한다. 문을 닫은 태형은 그 자리에 주르륵 무너졌다. 정국이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태형은 제 심장이 조각나는 것 같아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하얀 셔츠가 제 마음처럼 구겨진다. 정국이 다른 사람을 안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없었던 일도 아니었다. 그런 것쯤 태형은 어떻게 제 슬픔을 다스리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국의 그 표정은, 그 목소리는. 태형은 울컥 쏟아지려는 제 감정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숨을 삼켰다. 흐으, 하고 쏟아지려는 제 울음을 제 손으로 막고 시려오는 눈을 감는다.
지민을 안던 정국이… 울고 있었다.
*
+)
BH 인더스트리 = 빅히트 인더스트리 깔깔 ...시무룩
이름 짓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네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저기서 3분 동안 키보드 안 치고 멍하니 있음
그러다 JK 인더스트리, BH 인더스트리 고민하다 저거 씀ㅋㅋㅋㅋ
둘 다 ㅄ같다...
+)
정국이 술에 취한 것 ㄴㄴ 약에 취한 것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