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국슙] Behind DADDY 02. (2) 본문
[국슙] Behind DADDY 02.
: 남준과 호석의 집을 먼저 찾았던 그 누군가
w.몽블랑
*
“아이고, 죽겠다…!”
성인 남자를 씻기는 게 이렇게 고된 일인 줄 몰랐다. 신장 차도 체격 차도 큰 두 사람이었지만, 몸에 힘을 넣지 못하는 윤기가 하느작거리는 탓에 성규는 윤기를 안고 땀을 뻘뻘 흘렸다. 덕분에 윤기의 머리까지 보송하게 말려 침대에 눕히고 이불로 윤기를 둘둘 말아놓은 성규가 거실로 나오자마자 바닥에 뻗었다.
“아 배고파… 허엉, 목도 마르다.”
거기에 담배도 말렸다. 몸을 일으켜 냉장고를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주머니에서 꺼낸 담뱃갑은 돛대를 남기곤 텅 비어버렸다. 에이씨, 하고 쓰레기통에 담뱃갑을 던진 성규는 윤기의 옷장에서 찾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슬리퍼를 직직 끌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담배, 맥주, 컵라면을 사들고 핫바를 입에 문 채 집에 들어왔을 때였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보는 남자와 아까 성규에게 주소를 줬던 예쁘장한 남자가 거실에 들어와 서 있었다. 성규와 눈이 마주친 두 남자는 놀란 눈을 한 채 말이 없었다. 그에 성규가 …읭? 하고 소리를 내자 처음 보는 남자가 제게 성큼성큼 다가와 멱살을 잡아 올려 닫힌 현관문으로 쾅, 밀어 붙였다.
“너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새끼야? 너 정국이 아니지. 어?! 누가 보냈어. 윤기 형 아버지가 보낸 새끼 아니야?! 대답해, 이 개자식아!”
“켁, 크엑… ㄴ, 놔…! 놓으라고…!”
남자에게 잡힌 멱살에 숨이 막혀서 켁켁대다 물고 있던 핫바가 입 밖으로 떨어졌다. 아 시발, 내 핫바…. 떨어진 핫바에 시선을 떨어뜨리던 성규가 숨이 막혀서 괴로워하자 뒤에 있던 예쁘장한 남자가 놀라서 다가왔다.
“남준아, 그만해! 숨 못 쉬잖아!”
예쁘장한 남자는 남준의 손을 억지로 떼어냈다. 그제야 목이 자유로워진 성규가 컥컥대며 거세게 기침을 했다. 먹던 핫바가 기도로 넘어갔는지 기침이 한동안 이어졌다. 성규는 먹던 핫바를 다 퉤퉤 뱉어버리고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억울한 표정을 했다.
“당신들 뭔데… 뭔데 행패야?!”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김남준, 그만하라고!”
남준이 이번엔 주먹을 휘두르려는 것을 예쁘장한 남자가 울먹이듯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 남준이 휙 고개를 돌렸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예쁘장한 남자의 표정에 남준이 손을 천천히 내렸다. 예쁘장한 남자의 표정엔 죄책감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모두 다 지켜보던 성규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지금 당신들 뭐야. 뭐하는 거야?”
“넌 뭔데.”
남준이 성규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위협적으로 물었다.
“윤기 형 찾아서 뭐하려는 새낀데, 넌.”
“아까 다 말하는 거 같던데 내가 말할 필요가 있나?”
“헛소리 말고 불어.”
“윤기 씨 데려오라고 회장님이 보낸 용역이지, 뭐.”
성규가 어깨를 으쓱이자 예쁘장한 남자는 끝내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애먼 이에게 윤기의 주소를 건넨 장본인이었다. 그런 그를 씁쓸한 표정으로 보던 남준이 다시 성규를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윤기 형은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짓 했어. 당신이 저렇게 만든 거야?”
“나도 몰라. 여기 앞에서 만났을 때 이미 바닷물에 푹 젖어서 정신 못 차리길래 씻겨둔 것뿐이야.”
“…또?”
남준의 또? 하는 말 뒤로 예쁘장한 남자의 입에서 젖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를 들은 남준은 무거운 얼굴로 성규를 향해 물었다.
“아니 그보다, …당신이 왜 씻겨줬는데.”
잠시 생각하던 성규는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라.”
“뭐?”
그게 성규 자신에게도 제일 알고 싶은 부분이었다. 왜 자신은 혼자 윤기를 만나러 왔으며, 왜 동료들에게 데려가지도 않고 이러고 앉아있는지. 윤기와 만나면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단 둘이 얘기를 좀 해보는 것이었는데, 이 두 사람의 기세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른 듯싶다.
“그냥 저렇게 두면 윤기 씨 아파서 앓을까봐. 그래서 씻겼어. 그게 다야.”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안 믿으면 어쩔 건데. 내가 윤기 씨한테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지금.”
못 한 것에 가까웠지만. 자신을 찜찜하게 쳐다보는 예쁘장한 남자와 남준의 시선을 받으며 성규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낭비였다. 성규가 소파에 놓여있던 제 겉옷을 집어 들자 남준이 현관문을 틀어쥐었다.
“어디 가. 당신 못 가.”
“나 가야 돼. 가서 직원들한테 여기 주소 알려줘야 돼.”
“절대 안 돼. 당신 아무데도 못 가. 윤기 형 아버지한테 들키면 우리 다 끝장이야.”
남준의 말에 성규가 피식 웃었다.
“안 들키면 되잖아.”
“…뭐?”
“내 말 모르겠어? 들키지 말라고.”
성규의 말에 예쁘장한 남자도 남준도 그를 쳐다보며 눈만 껌뻑거렸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하고 남준이 묻자 성규가 어휴, 이 멍청이들.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 설명하듯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사라지면 회장님이 우리 직원들 제주도 전역에 풀어서 찾을 거야. 그러면 당신들쯤 못 찾을 것 같아? 그 사람 능력은 우리의 예상치를 초월해.”
“…….”
“그러니까 잘 들어. 나는 여기서 나가서 동료들한테 가서 여기 주소를 불 거야. 그럼 우리 동료들이랑 여길 쳐들어오겠지? 그때까지 여기에 윤기 씨가 남아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우리랑 같이 서울로 끌려가겠지?”
“…….”
“그런데 만약에 여기 윤기 씨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 내가 억울하게 얘기하겠지. 아니 아까 그 새끼들이 주소를 잘못 줬나 봐요! 그럼 우리가 당신들한테 가겠지? 윤기 씨 주소를 찾으려고 당신들 집을 다 뒤집어 놓겠지? 그 짓을 한 번만 하겠어? 당신들이 집에 있는 한 주소 불 때까지 계속 그러겠지?”
“…지, 지금 뭐….”
성규의 원맨쇼에 예쁘장한 남자가 말을 끊고 되물었다. 그러자 성규는 꼭 말해줘야 아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윤기 씨 데리고 도망가라고.”
“…….”
“윤기 씨 다른 데로 피신시키고, 당신들도 도망가라고.”
할 말이 끝난 성규가 현관문을 열었다.
“뭐해. 빨리 윤기 씨 데리고 나와.”
남준과 남자가 그 말에 일단 윤기를 가벼운 담요로 덮어 업고 나왔다. 먼저 빌라 밖으로 나왔던 성규는 택시를 잡아 두었다. 돈 있지? 하는 성규의 질문에 남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업고 있던 윤기를 뒷좌석에 눕히고 남자도 먼저 뒷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보조석의 문을 열기 전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성규가 남준의 얼굴을 보다 픽 웃었다.
“글쎄. 아마… 나중에 윤기 씨를 만나고 싶어서?”
“…….”
“그러니까 윤기 씨 잘 건사하고. 정국이라는 사람한테도 주소 막 알려주지 말고.”
“…….”
“택시 나가면 나 100 셀 거야. 그리고 직원들한테 전화할 거야. 직원들 멀리 있지 않으니까 택시 기사양반한테 100 셀 동안 열심히 밟아 달라 그래.”
남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택시에 올라탔다. 그들이 어디를 목적지로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택시가 떠나고 성규는 담배를 한 대 다 태운 다음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백, 구십구, 구십팔, 구십칠…… 칠십사, 칠십삼, 칠십이…… 서른, 스물아홉, 스물여덟…… 삼, 이, 일, …땡.”
망설임 없이 전화기를 꺼내든 성규는 용역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제가 아까 그놈들 조져서 주소 간신히 받아냈는데요, 회장님 아들 이미 튄 거 같은데요! 어떡하죠? …아, 여기 주소요? 제가 카톡으로 보낼 테니까 내비 찍고 오십쇼, 형님. …죄송합니다. 뜬 지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아, 큰일이네…. 예예, 예. …예엡.”
전화를 끊고 난 후 밀려온 적막이 공허했다. 성규는 쓴 입맛이 담배 때문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꼭 반드시 윤기와 만나리라. 그때 이 마음이 뭔지, 이 감정이 뭔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단순한 흥미인지 아니면, 뭐라도 있는 건지. …오늘 베푼 선의로 저들도 그때 조금은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까? 성규는 참 쓸데없는 생각이다 하면서도 피실피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훗날을 위해, 참는다 내가.
…다음엔 안 참아.
*
+)
다음엔 안 참을 성규씨를 기대해 봅시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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