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국슙장편 (53)
외딴 섬 같은 나도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26.w.몽블랑 * 평소 같은 밤길이었다. 풀마다 이슬이 맺힌 촉촉한 새벽의 길은 스산하리만치 고요했지만 윤기는 그 고요함이 제 피부 같이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제 향의 탓일 지도 몰랐다. 정국과 몸을 섞고 나면 제게도 느껴질 만큼 피어오르는 제 새벽향기가 이제와 낯설다면 이상할 것이었다. 정국이 잠이 든 사이 곁을 빠져나와 궁을 나올 때쯤, 옅어져 버린 숲의 향기에 어딘가 한 곳이 텅 빈 듯 외로움을 느낄 때면 언제나 같은 하얀 달빛이 말 없는 친구처럼 은은히 제 길을 비춰주곤 하는 것이었다. 저 달빛만큼은 제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아 윤기는 묵묵히 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집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느낌에 무언가 이상했다. 윤기는 평소 같은 고요함이 깨진 듯한 ..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10.w.몽블랑 * 더 빛을 잃을 일 없을 줄 알았다. 더는 잃을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닥에도 바닥은 있는 모양이었다. 지난번 정국이 교태전에 들른 이후로, 지민의 눈은 빛을 잃었다. 태형은 교태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지민을 오랜 시간 설득해 후원으로 나온 참이었다. 따뜻한 햇빛과 색색들이 피어있는 꽃, 산들거리는 바람에도 지민은 참으로 무감했다. 연못 위로 자잘하게 부서지는 햇살이 눈이 부시지도 않은지, 지민은 그곳만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밝은 햇빛 아래에서 보니 지민의 얼굴이 얼마나 창백해졌는지 실감이 났다. 늘어뜨린 까만 머리와 대조되어 더 하얗게 보였다. 지민의 곁에서 그를 내려다보던 태형의 눈에, 아이를 안고 있는 지민의 가슴께가 벌어진 것이 보..
[국슙] Behind DADDY 04.: 민윤기, 전정국 그 뒷이야기w.몽블랑 *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지민이 무언가를 착각했겠지, 하고 넘겼다. 윤기가 지금 조금 불안해 하기는 해도, 자신이 곁에 있으면 언젠가 윤기도 괜찮아질 거라고, 지금 윤기는 서서히 괜찮아지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정국은 믿고 있었다. 정국은 복학을 했다. 수업이 없으면 칼 같이 집에 왔다. 윤기는 공강 시간마다 집에 오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지만 정국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대디랑 있는 게 더 좋아요. 정국의 말에 윤기는 힘없이 웃었었다. 그러나 막상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고 과제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정국은 조별 과제로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시간이 늘었다. 집에만 붙어 있는 윤기가 신경 쓰여 윤기에게도 밖에 나갈 것을 ..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06.w.몽블랑 * 입궁하는 박 대감의 발걸음이 거칠었다. 그는 곧바로 교태전으로 향했다. 이번 지민의 주기에 정국이 교태전을 찾지 않았다 하였다. 어의와 호위가 꽤나 왕에게 강력하게 얘기했던 것 같았으나, 정국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중전의 아비로서, 그리고 이 나라의 중신으로서 자존심도 상했고 속도 상했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불편한 얼굴로 교태전에 들자 박 대감이 올 줄 몰랐던 지민이 놀란 얼굴로 그를 맞았다. 아버지, 하고 부르는 지민과 고개를 숙이는 태형을 포함해 올리는 인사를 모두 무시한 박 대감은 지민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뱉었다. “중전마마, 잠깐 저와 하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네….” 방에 들어가자 침통한 얼굴의 박 대..
[국슙] Behind DADDY 04.: 민윤기, 전정국 그 뒷이야기 병원에서 윤기가 눈을 뜬 뒤로, 정국은 한순간도 윤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떠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지 몰랐다. 그날. 비가 쏟아지던 날. 아버지의 눈앞에서 정국의 손을 놓쳤던 윤기는 아직도 그 손의 감각이 선연했다. 정국의 손이 제 손 안에서 빠져나가던, 그 서늘한 느낌이. 그 과거는 윤기의 꿈속에서 여러 번 반복됐다. 놀란 듯 발작하며 잠을 깨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도 여러 번이었다. 제가 곁에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윤기를 알기에 보호자용의 보조침대에서 잠드는 정국은, 윤기가 그렇게 깰 때마다 같이 잠을 깼다. “하아, 하아… 정국, 정국아….”“으응… 대디…?” 윤기의 목에선 쇳소리만 났다. 의사가 아직 목의 상처가 ..
※ 추천 BGM : Max Richter - Path 5 (delta)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04.w.몽블랑 * 그날 밤, 홀린 듯 윤기를 제 침소로 끌어들인 정국은 제 자신조차 그날 밤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정국이 단편적으로 드문드문 기억하는 것은, 칼같이 단정했던 대전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새하얗게 흐트러져 가쁜 숨을 내쉬던 윤기와, 그를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들고 미친 사람처럼 거친 움직임을 반복하던 자신, 그리고 그 품안에서 벗어날 생각도 못한 채 정국에 맞춰 흔들리다 이내 허리와 허벅지를 떨며 무너지던 윤기, 정도였다. 기억들이 연속되지 않은 채 편린처럼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었다. 정국에게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향이었다. 아니, 그보다 꽃향기나 과일의 향, ..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03.w.몽블랑 * 여느 때와 같이 아이와 함께 오후 시간을 보내는 지민이었다. 따뜻해진 봄 햇살을 맞으며 아이는 지민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그런 아이를 토닥이며 바라보던 지민 또한 몸이 나른하다 생각했다. 벌써 햇살이 이렇게 따뜻해질 때가 되었나 싶을 정도로 꽤 공기가 달아올랐다는 느낌이 들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보료로 자리를 옮기려던 지민은, 일어섬과 동시에 다리가 풀려 아이를 든 채 그 자리에 주르륵 주저앉았다. “아, 흐읍…!” 놀란 태형이 마마, 하고 부르며 다가왔지만 지민은 다급하게 ‘다가오지 마시오!’ 하고 거부했다. 단호하면서도 당황스러워 하는 지민의 목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멈춘 태형에게, 지민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색색대는 숨을 애써 감..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02.w.몽블랑 * 몇 년 후,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는 궁궐의 주인을 바꾸어 놓았다. 대왕대비에 이어 왕이 승하하고 세자였던 정국이 그 자리에 올랐으며, 지민은 세자빈에서 중전이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왕자가 태어났다. 정국과 지민을 닮아 눈처럼 희고 고운 아이는 방긋방긋 웃기도 잘 웃었다. 지민이 그랬듯, 주변 이들을 사르르 웃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를 바라보는 지민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더 웃지 못한다고 하는 게 맞았다. 공무 때문에 입궐했던 지민의 아버지는 오랜만에 지민을 만났다가, 그의 표정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마마, 어디 몸이라도 좋지 않으십니까.”“..
[국슙]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01.w.몽블랑 지민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것은 태생부터 그러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사랑스러운 아이는 티 없이 하얗고 밝았다. 눈이 사르륵 접히며 꺄르륵, 하고 맑은 소리와 함께 아이가 웃을 때마다 집안의 모두가 아이를 따라 웃었다.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는 과한 사랑 속에서도 예쁘고 바르게 자라났다. 아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 커다란 애정이 분명 아이를 흔들고 망칠 수도 있다 생각하였으나, 아이는 그 모든 관심과 애정을 받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듯 자신에게 뿌려지는 애정 어린 행동들에 대해 전혀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냥하고 곱게 답했다. 아이에겐 그 거대한 애정이 전혀 넘쳐..
이거 쓰고 싶어서 이거 씁니다 ^ㅁ^ 국슙/국민이라고 써놨는데 사실 아마 국민, 국슙, 진슙 외에도 많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그냥 일단 이거 쓰고 싶어서 지르는 중이니까 아무도 말리지 마세욧(...) 일단 이 글은 저 사진 보고 생각났어요. 정국이한테 기대는 지민이, 그런 지민이에게 어깨를 내주면서 윤기 손 같이 바라보는 정국이. 왜 귀신 같은 비키트는 저런 사진을 풀어서 내 맘을 흔드는 건데ㅠㅠㅠㅠ 고전물이고 알파오메가버스로 갈 겁니다. 알파=양인, 오메가=음인 이라고 나올 거예요. 왕가는 대대로 양인이 대를 잇고 있으며, 남자 음인은 흔치 않지만 흔치 않아서 떠받들어지는 세계입니다. '악역이 없는 글'을 써보고 싶어서 써봅니다. 굳이 악역이 무엇이냐 한다면 운명?이 악역인 글...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