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국슙장편 (53)
외딴 섬 같은 나도
[국슙] DADDY 23.w.몽블랑 * 윤기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도 오랜만이라 생각했다. 정국은 덤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로 두서없이 평범한 말들을 꺼내놓는 윤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 같아 정국은 괜히 불안해졌다. 용건도 없는 것 같은 전화였지만 왜인지 끊지 못한 통화였다. 그러나 그 끝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 너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 …정국아.- 나 결혼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 가사가 떠올라 정국은 피식 웃고 말았다. * - 김태형.“엉.”- 나와. 나 지금 니네 집 앞.“…엉?!”- 빨리 나와. 끊는다.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던 태형이 시계로 눈을 돌렸다. 시곗바늘은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으며 태형..
[국슙] DADDY 22.w.몽블랑 * 정국이 변호사가 건넨 서류를 받아봤던 그날이었다. 정국은 그게 윤기가 자신을 맡게 된 그날 작성된 서류인 줄 알았다. 그래서 윤기의 아버지가 혹여나 정국을 기르는 것이 윤기의 앞길을 막게 될까봐 작성한 것인 줄 짐작했던 것이다.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자 봉투 안엔 꽤 두툼한 양의 사진이 남았다. 정국은 먼저 서류로 눈을 돌렸다. 정국이 처음 놀랐던 건 서류의 작성 날짜였다. 서류의 작성일은 이제 1년 조금 더 지나 있었다. 즉 자신과 윤기가 사귀고 있을 때 작성된 서류라는 얘기였다. 자신이 윤기와 함께 하며 행복해 하고 있던 그때, 윤기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떤 약속을 하고 돌아왔던 걸까. [ 합의서 1. 모든 것은 윤기는 정국이 법적인 성인이 되는 시기를 기준으로 잡..
[국슙] DADDY 21.w.몽블랑 ※ 본 편은 다소 수위가 있고 다소 폭력적임을 알려드립니다. * 호텔 카페에 앉은 윤기는 멍하니 제 앞의 커피잔을 내려다 보았다. 정국이 집을 떠나고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잔 지가 벌써 2주가 넘었다. 그 2주 사이에 아버지는 자신과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리고 윤기에게도 본인과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정국이 성인이 되면, 윤기 자신도 2년 내로 결혼을 할 것. 절대 정국이 윤기의 인생을 낭비하게 하지 말 것. 어쩌면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버지와의 계약은. 그러나 아버지는 마치 그날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일을 착착 이행시켜 나갔다. 이 자리까지 나와 있는 제 자신이 허수아비 같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무역 대리 민..
[국슙] DADDY 20.w.몽블랑 * 변호사에게 찾아가라며 윤기는 정국에게 연락을 해왔다. 남은 유산 문제가 있다는 말에 정국은 어리둥절했다. 지금까지 유산이란 존재에 대해 몰랐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모의 존재와 유산까지, 정국은 조금 제가 모르고 있던 게 새삼 많다고 느꼈다. 윤기가 준 변호사의 명함을 들고 로펌을 찾은 건 수업이 끝난 어느 날의 오후였다. “이게 정국 씨 앞으로 남겨진 유산이고, 이쪽은 그 공증 서류입니다. 지금까지 윤기 씨가 관리해 오셨고 10년 넘게 예치해둔 덕에 금액에 이자가 조금 붙었어요. 금액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확인해 보시고요.”“이제 정국 씨도 성인이 되시면서 공증도 고지된 대로 소유권을 넘겨받기로 되신 겁니다. 나머지 법적인 절차는 저희가 해드리겠습니다. 고지도 해 ..
[국슙] DADDY 19.w.몽블랑 * 어쩌면 날벼락이었다. “정국아, 인사드려. 네 이모 되는 분이셔.” 정국은 학교에서 돌아와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여인을 보았다. 그 뒤로 소파에 앉아있는 윤기도 보였다. 아직 대디가 퇴근할 시간이 아닌데? 하고 정국이 갸웃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정국을 보자마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라 자신의 입을 막고 고개를 떨궜다. 정국의 놀란 시선이 그리로 옮겨지고, 귓가로는 윤기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저 목소리가. 윤기가 제게 한 말에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정국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여인은 정국이 굳어있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정국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국슙] DADDY 18.w.몽블랑 * 정국은 저도 모르게 새벽녘 잠을 깼다. 밤중에 잠을 깨는 일이 거의 없던 터라 갑자기 눈이 뜨인 게 스스로도 황당할 지경이었다. 정국은 뭐야, 하고 주위를 살피다 다시 베개에 머리를 놓는다. 뭐야, 왜 깬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의식이 멀리로 날아가려고 할 때쯤이었다. 쿵, 하고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국이 뭐지, 하고 흐릿하게 생각할 때쯤 한 번 더 쿵, 하고 울렸다. 정국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정국은 그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분명 안방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살며시 문을 열어 본 정국은 당황스러움에 문을 열고 윤기에게 다가섰다. “대디?” 윤기가 침대 시트를 꽉 붙든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시트를 쥔 손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너무 힘이..
[국슙] DADDY 17.w.몽블랑 * 윤기는 전날 저녁 들어오지 않았던 그대로 출근을 한 모양이었다. 정국은 퇴근 후 씻고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는 윤기를 소파에 앉아서 불편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윤기는 그런 정국을 모를 리 없는데도 내내 묵묵히 침묵을 지키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서야 정국의 옆에 앉아서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전정국.”“오늘 아침에 전화 받은 그 남자 누구에요.”“거래처 팀장.”“어젯밤에 그 사람이랑 같이 잤어요?”“…어.”“한 방에서?” 정국의 질문에 윤기는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쉰다. 그 얼굴이 지치고 피곤해 보여서 정국은 잠시 그만둘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윤기는 무언가 이상했다. “…응.”“지금까지,”“이제, 그만 물어보면 안 될까.”“…왜요.”..
[국슙] DADDY 16.w.몽블랑 * 정국은 OT를 다녀온 후로 거의 매일 같이 학교에 나갔다. 개강 후 2주일간은 거의 술을 안 먹고 들어오는 날이 없었다. 술자리마다 불려나가는 것 같았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당연했지만, 윤기는 밤늦게 들어오는 정국을 보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정국은 카톡을 통해 어떤 일로 늦는다고 꼭 말해주고 밥 챙겨 먹었냐고 말해주지만, 주위에 자신과 10살 이상은 차이나는 그 반짝반짝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있을 정국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씁쓸해지는 것이다. 그들과 어울릴 정국이 밉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국의 옆에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대디 나 오늘 선배들이랑 과 행사 준비해요 ][ 늦게 들어가서 미안해요 ][ 나는 잘 들어갈 테니..
[국슙] DADDY 15.w.몽블랑 ※ 수위 있습니다. 약하게…? * 졸업식 날이 다가왔다. 전날 미리 주문해서 맞춰놓은 꽃다발을 찾으려 꽃집 앞에 차를 잠시 세운 윤기의 손에 이내 화려한 꽃다발이 들려있다. 여러 가지 꽃이 자연스럽게 내미는 싱그러운 꽃향기에 윤기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학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윤기는 정국의 학교 담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학교 교문으로 들어서기 전 공연히 멈춰서 제 옷차림을 바라보다 미세하게 먼지가 묻은 바지 끝 쪽을 털어냈다. 작은 것까지 너무나 크게 보여서 윤기는 자신의 옷에 커다란 얼룩이라도 묻은 것처럼 정장 바지를 세세히 살폈다. 학교 강당으로 들어서니 2층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계단으로 걸어올라 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어 2층의 앞..
[국슙] DADDY 14.w.몽블랑 *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말 그대로 조금씩. 정국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생긴 저녁 시간에 두 사람은 산책을 나섰다. 따로 걷던 두 사람의 손이 스치고, 몇 번 손이 스쳤을 즈음 정국이 윤기의 손끝을 잡았다. 그리고 슬금슬금 올라와선 윤기의 손바닥 전체를 감싸 안듯 손을 잡는다. 윤기는 작게 웃으며 모른 척했고 정국도 헤헤, 하고 웃으며 넘겼다. 그 모든 순간들에 떨린 심장의 울림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않은 감각이었다. * “전정국이~”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치근댄다. 태형과 지민의 청소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던 정국은 무심한 얼굴로 다가오는 태형에게 제 옆자리를 내주었다. 헤죽헤죽 웃는 얼굴이 제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보며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