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국슙] DADDY 18. 본문

국슙 : DADDY (完)

[국슙] DADDY 18.

몽블랑11 2016. 11. 25. 21:19

[국슙] DADDY 18.

w.몽블랑



*



정국은 저도 모르게 새벽녘 잠을 깼다. 밤중에 잠을 깨는 일이 거의 없던 터라 갑자기 눈이 뜨인 게 스스로도 황당할 지경이었다. 정국은 뭐야, 하고 주위를 살피다 다시 베개에 머리를 놓는다. 뭐야, 왜 깬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의식이 멀리로 날아가려고 할 때쯤이었다.



쿵, 하고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국이 뭐지, 하고 흐릿하게 생각할 때쯤 한 번 더 쿵, 하고 울렸다.



정국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정국은 그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분명 안방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살며시 문을 열어 본 정국은 당황스러움에 문을 열고 윤기에게 다가섰다.



“대디?”



윤기가 침대 시트를 꽉 붙든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시트를 쥔 손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 윤기가 혹시 깨어 있나 하고 봤던 눈은 꾹 감긴 채였다. 윤기는 뭔가를 피하려는 듯 다리를 허우적거렸고, 그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간헐적으로 벽을 쿵쿵 치고 있었다.



“대디, 왜 그래요. 응? 대디, 정신 차려봐요. 대디!”



꽤 큰 정국의 목소리에도 깨어나지 않던 윤기는, 정국이 양 어깨를 붙들고 머리까지 흔들릴 정도로 세게 흔들고 나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



“여기, …어, 어디….”

“여기 집이에요. 괜찮아요?”



방울방울 속눈썹에 맺힌 눈물을 매단 채 윤기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전히 정국이 붙든 어깨가 떨리는데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얼굴로 기계적으로 괜찮다 대답하는 윤기의 모습이 정국에겐 납득이 되지 않았다.



“대디, 왜 그래요. 가위 눌렸어요?”

“…응, 그랬나봐. 가위….”

“…….”

“내가, 너 깨운 거야?”

“이 방에서 소리가 나서 와봤어요. 괜찮아요?”



소리가 났다는 말에 윤기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내가 무슨, 무슨 말 했어? 뭐라고 했는데?”

“…대디…?”

“뭐라고 했냐니까.”



정국은 윤기가 말을 했다고 한 적이 없는데, 윤기는 마치 제가 못할 말이라도 했을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윤기의 저 표정과 저 말투는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국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단 지금은 윤기도 자고 자신도 자는 게 맞을 것 같아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일단 자요. 내일 다시 얘기해요, 우리.”

“…….”

“자요. 무서우면 내가 옆에 있어 줄까요?”

“아니, 아니야. 먼저 가. 나 혼자 잘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요. 잘자요, 대디.”

“응, 너도.”



문을 닫고 나오며 정국은 쓴웃음을 어금니로 꽉 깨물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윤기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떨면서도 정국에게 옆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힘들 때 옆에 있게 해주겠다고 했으면서, 그 모든 말을 거짓으로 만들고 윤기는 곁에서 정국을 내쳤다.



윤기를 몰아붙였던 꿈보다 지금 윤기에게 더 공포스러운 건, 정국과 함께 잠드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윤기가 할 지도 모를 헛소리를 정국이 듣는 것이, 윤기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국은 윤기가 그렇게까지 감추려하는 그 헛소리의 정체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벌써 며칠 째 같은 꿈이었다.



그 꿈에 잠을 설친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윤기는 식은땀으로 젖은 앞머리를 이마에서 대충 떼어내다 문득 씁쓸하게 웃었다. 인간의 양심이란 것이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랐다가, 이럴 때 난데없이 튀어나와 인간을 괴롭게 한다.



그날,



평소와 같이 거래처와의 식사를 끝낸 윤기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 그를 붙든 건 상대 거래처 팀장이었고, 같이 가서 술 한 잔 더 하지 않겠냐는 그의 말을 윤기는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꽤나 크고 오래된 거래처 중 하나였고, 상대는 이번에 구매팀으로 새로 들어온 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윤기와 둘이 술자리로 옮기고 나서부터 윤기에게 칭찬 일색이었다. 외모 칭찬부터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성격 칭찬까지 하는 그에 윤기는 당황스러웠지만 웃으며 넘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평소 같지 않게 술을 마셨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 양의 술을 마시고 아무런 기억이 없이 다음 날 호텔 방에서 브리프 한 장으로 잠을 깨는 건 이상했다.



처음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잠이 덜 깬 채 호텔을 나올 때까진 그랬다. 그러나 집에 와 정국의 얼굴을 본 순간 안개 속에 묻혀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어디에요.’

‘정신 좀 차려 봐요.’

‘진짜 이럴 거에요?!’



전화기 너머로 화가 난 정국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고도 확실하게 떠올랐다. 언제 들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정국에게 뭐라고 답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흐릿한 기억 속의 정국은 제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윤기를 놀라게 했던 건 엷은 웃음을 머금고 제 귓가에 핸드폰을 대어 주던 그 남자에 대한 선명한 영상이었다. 샤워 가운만을 입고 같은 침대 위에 앉아 웃으며 제 귀에 핸드폰을 대어주던 그.



분명 그날 그와 입술이 닿았었다.



안개 같은 기억들 속에서 그 사실 하나가 떠올랐을 때,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불편한 표정의 정국을 외면한 채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윤기는 무언가 제대로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국의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워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윤기는 제 자신을 거세게 흔드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윤기는 몸을 돌려 옆에서 잠든 정국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이 내리 감겨 있었다. 높은 콧대를 지나 입꼬리 옆의 볼살은 사탕이라도 물고 있는 듯 통통해서 정국을 더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잠들어 있는 정국의 표정이 세상모르게 편안했다. 정국은 깊게 잠이 드는 편이라 어떻게 만져도 웬만해선 깨지 않았다.



윤기는 조심스레 정국의 곁으로 더 다가갔다. 밤의 불빛에 정국의 얼굴이 어렴풋이나마 보였다. 가까이서 정국을 본 게 너무 오랜만인 것도 같았다. 물론 이보다 더 가까이 닿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이렇게 보고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까만 해도 그랬다. 분명 둘은 닿아 있었고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둘러싸인 윤기는 정국에게 닿지도 못하고 멀어지지도 못한 채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마음이 불안해서인지 평소보다 느껴지지도 않아 윤기는 고통으로 만들어진 짧게 끊어지는 신음만 흘렸다. 밑이 얼얼하도록 아파왔지만 윤기는 티내지 않으려 제 신음소리를 고르며 안간힘을 썼다.



‘…대디.’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견디던 윤기를 정국의 낮은 목소리가 불렀다. 



‘으, 윽…, 응.’

‘손 떼어봐요.’

‘…왜. 아, 읏….’

‘내가 손으로 치우기 전에 떼요.’



정국의 말투가 강압적이었다. 윤기는 천천히 제 손을 눈에서 뗐다. 그제야 알았다. 흐른 줄도 몰랐던 눈물이 손등에 척척했다. 시야는 속눈썹에 맺힌 눈물로 흐릿했다. 정국이 세게 올려붙이며 윤기를 품에 끌어안고 얼굴을 맞댔다. 갑자기 여린 살이 쓸리는 고통에 아윽, 하는 소리와 함께 윤기가 고개를 꺾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자 정국의 한숨이 귓가에서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어. 목소리가 울잖아요. 왜 울어요.’

‘…나 아파.’

‘어디가 아픈데요. 내가 볼게요.’

‘밑에… 아파.’



정국이 몸을 빼려하자 윤기가 깜짝 놀라며 빠져나가지 못하게 허벅지를 조여왔다. 정국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아프다면서요. 하는 정국의 말에 윤기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키스, 키스해줘.’

‘…하, 대디 지금,’

‘입 맞춰줘, 빨리. 정국아.’



정국은 몸을 빼지 않은 채 윤기의 입술에 입술을 갖다 댔다. 정국이 나눠주는 체온에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국이 입술을 떼려고 하자 윤기는 제 손으로 정국의 얼굴을 살짝 잡아당겨 다시 키스했다. 정국을 금방이라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눈앞의 정국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누군가 제게서 앗아가려고 했다. 섞이는 혀가 떨려왔다. 정국을 붙들고 있는 손도 바들거리긴 마찬가지였다.



‘가지,… 가지 마….’

‘…….’

‘가지 마, 정국아….’



제발 나한테서 멀어지지 마. 윤기는 이제 울음에 가까운 숨을 내뱉고 있었다. 정국은 윤기를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불안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물 가득한 저 눈동자의 의미를, 정국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에요, 대디. 내가 왜 대디한테서 멀어져요.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국의 물음에 윤기는 답이 없었다. 다만 정국의 어깨를 꽉 안은 채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서러운 울음을 조금씩 토해냈다.



‘나도 많이 사랑해. 잊지 마. 전정국, 나도 너 사랑해.’

‘…대디….’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 나를 오해하지 마. 알겠어…?’



정국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어설프게나마 웃어 보인 윤기가 정국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안아 줘. 아파도 되니까, 지금 하고 싶어. 정국아, 나 안아 줘.



윤기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아마 정신을 잃을 때까지 정국에게 안긴 모양이었다. 언제 의식을 놓았는지도 모른다. 끊이지 않는 악몽에 눈을 뜨고 보니 이미 시간은 한 새벽이었고, 정국은 제 옆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윤기는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라 생각했다.



정국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겼다. 손끝에 닿는 정국의 체온이 따뜻했다. 너는 준비없이 너를 보내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내는 나 또한, 네가 이렇게나 간절하다는 걸… 아니, 너는 모르는 게 좋겠다. 제 몫까지 아픈 걸 바라지는 않았다.



윤기는 정국의 깨끗한 이마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고, 다시 울고 싶어졌다. 이제 닿을 수 있는 따뜻함이 아니었다. 더 이상 제겐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



+) 

우울한 것만 쓰고 싶어요. 

~장래희망~

'국슙 : DADDY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슙] DADDY 20.  (0) 2016.11.25
[국슙] DADDY 19.  (2) 2016.11.25
[국슙] DADDY 17.  (0) 2016.11.25
[국슙] DADDY 16.  (0) 2016.11.25
[국슙] DADDY 15.  (2) 2016.11.2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