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국뷔] 늦게 피는 꽃 07. 본문
[국뷔] 늦게 피는 꽃 07.
w.몽블랑
*
쭈그려 앉아 한참을 울던 태형은 그제야 정국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깨닫고는 옆에 같이 쭈그려 앉아 제 등을 토닥여주던 정국을 향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국아, 여기 있으면 안 돼.”
“왜?”
“사람들에게 들키면 큰일 날 거야.”
“너랑 같이 있으면 되잖아. 네가 여기 주인 아니야?”
정국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정국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지만, 태형은 어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태자의 후궁이며, 후궁은 다른 남자와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음을 어찌 설명해야 좋을까. 이미 자신은 다른 이의 사람임을, 어떻게 말해야 좋단 말인가. 태형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곤란해 하는 태형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내가 여기 몰래 올게. 우리 앞으로 한 달 동안 여기 있을 수 있대. 매일매일 만나러 올게.”
“…….”
“밤늦게, 엄청 늦게, 아무도 안 올 때, 아무도 못 보게 몰래 올게. 아무도 나인 줄 모르게 이거, 가면도 쓰고 올게.”
“…….”
“그래도 안 돼…?”
정국은 시무룩해 하면서도 간절했다. 태형은 대답을 망설였다. 밤늦게 오는 것은 태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얼마 전의 태형이라면 그것조차 안 된다고 위험하다 거절했을 것이나, 태자의 발길이 끊어진 지금 태형이 정국을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태형에겐 정국을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을 거부할 의지도 없었다. 태자를 배반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어떠한 중죄인지 알면서도, 태형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한 달만, 아니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만큼만, 욕심내고 싶었다.
“아니… 좋아.”
태형이 정국을 향해 작게 웃었다. 태형은 옆에 앉은 정국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정국과 눈을 맞추다 다시 맑게 웃었다. 그 미소를 멍하니 마주보던 정국은, 태형과 똑같이 방긋 웃어보였다.
“…나도, 나도 좋아.”
외로운 밤을 지키는 아름다운 내 달빛 같은 사람.
처음 봤을 때부터였다. 정국은 태형에게 홀린 듯 말을 걸었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이런 곳에 갇혀 있는 태형을, 아까처럼 혼자 울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네 달빛은 내가 될게.’ 정국은 태형의 손을 더 꽉 고쳐 잡고는 오래오래 놓지 않았다.
*
그렇게 밤의 밀회는 시작되었다.
정국은 몸을 쓰는 예인이라 그런지 소리도 기척도 없이 만화전을 찾았다. 만화전 안에 고요히 앉아 기다리는 태형조차 정국이 오는 것을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국이 워!, 하고 어깨를 잡으며 놀래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 모습을 보고 커다랗게 웃는 정국을 억울한 듯 펑펑 때리기도 했다.
어느 날은 태형이 정국을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고 나니 해가 떠 있었다. 정국을 만날 수 있는 하룻밤이 허망하게 가버린 것이 서운해서, 다음 날 조금 이른 밤에 찾아든 정국에게 태형이 웅얼거리듯 왜 어제는 오지 않았냐 말하자 정국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 왔었어.”
“그럼 왜 날 깨우지 않았어?”
“너무 예뻐서.”
“…….”
“잠든 게 너무 예뻐서 깨울 수가 없었어.”
어젯밤을 생각하니 무언가 억울한 듯 정국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나도 억울해. 너 자는 것만 봤는데 하룻밤이 다 가버렸어. 너는 왜 코도 골지 않고, 침도 흘리지 않고, 나처럼 사방으로 이불 다 흩트리지도 않고, 내가 너무 예뻐서 깨우지도 못하게 왜 그렇게 예쁘게 자?”
“…….”
“너는 자고, 나는 너 보느라 못 자고, 숙소 가서도 너 생각나서 두근대서 못 자고. 진짜 억울한 건 나야.”
진심으로 억울한 듯한 정국의 말에 대답을 잃은 태형이 정국을 바라본 채 눈만 깜빡였다. 뭐라 대거리도 할 수 없던 태형은 잠시 후 얼굴과 귀까지 발그레해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정국은 그런 태형의 단정하고 새까만 머리카락에 빠르지 않게 입을 맞췄다. 촉, 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태형이 고개를 들었고 정국은 똑같이 발그레해진 얼굴로 웃지도 못한 채 말했다.
“너 진짜 너무 예뻐….”
정국은 침대에 앉은 태형의 어깨를 잡고 옆에 앉아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깨끗한 이마에 한 번, 높게 뻗은 코끝에 한 번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혼란스러워 하는 태형의 눈을 코앞에서 바라보던 정국은 태형의 입술에 살며시 제 입술을 겹쳤다 떼었다. 다시 올려다 본 태형의 눈동자에 아직도 남아있는 두려움에, 정국이 한 번 더 입술을 겹쳤다 떼자 태형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정국은 그제야 태형의 뒷머리를 손으로 받친 채 태형의 입술을 열고 깊게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사이엔 백지장 하나 들어갈 수 없을 만큼 틈 하나 없었다. 자신의 어깨와 머리에 닿은 정국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게 느껴져서, 태형은 왜인지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연회는 이미 2주차의 공연을 마친 후였다. 대문 내의 가난하고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을 모아 벌였던 마당극 또한 사람들의 성원을 자자하게 들으며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난 이틀 후였다.
*
“태자전하 납시오—.”
환관의 말에 침대에 앉아있던 태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자라니. 갑작스러운 태자의 방문에 태형은 제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하다 태자를 맞이하기 위해 문이 열리는 맞은편에 섰다. 달이 건물 너머로 떠오른 시간이었으나 아직 정국은 오지 않았고, 건물 안에 기척이 나면 정국은 들어오지 않을 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태자전하, 강녕하셨습니까.”
태형은 조금은 뻣뻣하게 굳은 채 태자에게 인사를 했다. 태자는 그런 태형의 인사에 고개만 끄덕이고는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만화전 내부의 것들을 달라진 것이 없나 확인하는 사람처럼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
태황태후에게서 무언가 명이 내려왔다면, 태형에게도 그 명이 하달되었어야 맞았을 것이며, 그런 날엔 태자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태형이 태자의 침소로 향하는 것이 으레 해왔던 방식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태자는 밤늦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만화전을 찾아들어 왔다.
태자가 이렇듯 공개적으로 만화전을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태형은 이런 식의 방문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생각하던 태자는 뒤따라온 환관들과 궁인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물러라. 오늘 밤은 만화전에서 묵을 것이다.”
“예.”
환관과 궁인들이 옷깃이 스치는 소리만을 남긴 채 태자와 태형에게 고개를 숙이고 떠나고, 문 사이로 새어들던 달빛도 그들이 닫은 문 뒤로 온전히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
태자와 태형 사이에서 잠시간의 적막이 흘렀다. 태자는 태형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예.”
“내가 반갑지는 않은가 보지.”
태형은 놀란 숨을 저도 몰래 집어삼켰다. 오랜만에 찾아온 태자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불편한 기색을 띠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다. 태자가 저리 말할 정도면 긴장감에 어지간히 표정을 굳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태형은 쉽게 표정을 바꾸지는 못했다. 여전한 긴장감과 중압감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를 보던 태자는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비쳤다.
“지난 번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나를 반가워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겠지.”
“…….”
“선대 황제와 우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너도 들어봤느냐.”
태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말함이 분명했지만, 굳이 대답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태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자는 …들어보았구나, 그래.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쓸쓸하고 공허하게 들려서 말을 듣는 태형마저 마음이 쓰릴 정도였는데, 태자는 슬픈 웃음을 머금은 채 자조하듯 말했다.
“한 나라의 태자가, 아직도 어미 손을 그리워하면서 밤에 잠조차 설친다는 게, …우습지 않으냐. 어미젖도 못 뗀 어린 아이 같은 짓을 아직도 하고 있으니….”
그 무게감과 위치가 커다란 산 같은 태자였다. 태형은 태자를 처음 만난 날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를 모실 운명이라 들으며 18년을 살다가, 아무도 제 편이 없는 곳 같던 궁에서 드디어 만났던 사람이었다.
비록 태자는 처음엔 악에 받쳐 태형을 대했으나, 남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때문에 태형의 태자에 대한 원망은 커질 수가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 급하게 태형의 품을 찾는 것을 보고서는, 그를 더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자기 자신을 질책하는 태자가 한없이 가여워 태형은 마음이 아팠다.
태형은 태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태자의 볼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리 그리워하시며… 어찌 사셨습니까, 전하….”
태형의 손길에 태자가 놀란 눈을 했다. 물을 머금은 태형의 눈동자가 그것이 그의 진심임을 알렸다. 태자는 태형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제 얼굴에 닿은 태형의 손을 겹쳐 쥐었다.
“나를 동정하느냐.”
동정하느냐, 고 물으면 태형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감히 제까짓 게, 태자를 동정했다. 18년을 그를 위해 갇혀 산 주제에, 그의 삶을 가엾게 여겼다.
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형을 바라보다 그에게 입을 맞췄다. 태형은 거부 없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미끄러지듯 들어온 혀가 태형의 온 정신을 산란시켰다. 가는 허리를 감싸오는 손길이 간절했다. 태형은 어느 새 침대 위에 눕혀진 제 자신을 발견하고 그 위를 덮은 태자와 눈을 맞췄다. 열기를 띤 태형의 눈동자가 몽롱했다.
“나를… 동정해 다오.”
태자는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제게 애원하는 태자의 표정이 낯설면서도 태형을 얽어매듯 벗어날 수 없게 했다.
“오늘 밤, 나를 위로해 주겠느냐.”
태형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는 슬프게 웃으며 태형의 입술에 다시 입술을 내려앉혔다. 태형의 옷고름을 끌러 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몸에 닿고 태형이 몸을 움츠렸다. 그런 태형의 허리를 끌어안고 한껏 예민해진 태형의 감각을 되살리며 태자는 제 혼란스러운 표정을 숨겼다. 지금은 이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 제게도 편한 일이었다.
태형의 밭은 숨소리와 옅은 신음이 터지는 그 공간이, 저를 위로하기 위해 제게 안기는 이 아이가, 사실은 태자를 거세게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태자 이외엔 그 아무도 알지 못했다.
*
고요한 태황태후전에 사박사박 궁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태황태후를 향해 다가가 고개를 숙인 채 제가 본 것을 알렸다.
“오늘 태자전하께서 만화전으로 드셨나이다.”
“언제.”
“자시 조금 이전의 일입니다.”
“언제 떠나셨느냐.”
“그건 모르겠습니다. 만화전에서 하룻밤을 머무신다며 궁인들을 모두 무르셨다 합니다.”
“…하룻밤을 만화전에서 머물겠다고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태황태후의 표정 없는 얼굴 사이로 조그맣게 미소가 설핏 비친 것도 같았다.
“흥미로운 일이구나. 앞으로 더 지켜보아라.”
“예.”
궁인이 물러가고 태황태후는 한참을 더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켜져 있던 촛불을 끄고 침실에 들었다. 생각지 못한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손을 떠나지 않도록 태황태후로서는 여러 가지 대비책이 필요했다.
*
+)
하뜌를 어떻게 해야 생기게 하는지 드디어 알아냈스니다! (어깨춤) 덕분에 집 나갔던 하뜌가 돌아왔어요 ^ㅁ^
갑자기 사담이지만.. 그 은근.. 하뜌가 힘이 되거든요^ㅁ^ 막 쑥스럼 많으신 분들이 그냥 꾹 눌러주시기도 편한 것 같고... 그래서 집 나간 하뜌를 겁나 찾아다녔죠 핳하^ㅁ^ 그런데, 또 그런 만큼 댓글 써주시는 분들이 정말정말 감사한 부분도 있어요ㅠㅠ 용기 내서? 막 정말 정성스럽게? 어쨌든 제가 알았으면 좋겠다 해서? ..아무튼 말이 정리가 안 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댓글을 남겨주시는 거잖아요? ㅠㅠ♥ 이 자리를 빌어 하뜌 눌러주시는 분들,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ㅠㅠ♥
그래서 지난 번 편, 지지지지난 번 편까지 하뜌를 눌러주신 분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남겨주신 체리쉬님과 밀회님 감사합니다ㅜㅜ♥ 리댓은 지금 달러갈게요! 요번 편도 재밌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어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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