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16. 본문

슙민국뷔 : 인어공주 이야기 (完)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16.

몽블랑11 2016. 11. 25. 19:10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16.







몸이 어느 정도 낫자 태형은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아직 몸이 욱신거리는 건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맞아본 것도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몸을 추스르고 언제나처럼 이사실로 올라가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려는데, 갑자기 비서가 다가와 자신을 황급히 말린다. 태형은 영문을 몰라 곤란한 얼굴로 제 행동을 막는 비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저기….”

“…말씀하세요.”

“이사님께서 말씀이 있으셔서요….”

“네.”



태형은 비서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렸던 비서에게서 들려온 말은 태형의 심장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이사님께서 실장님은… 앞으로 사무실에 들이실 일 없을 거라고….”



태형에게 미안한 듯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이는 비서의 말에 태형의 부드러운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일자로 펴졌다. 그런 태형의 표정에 안절부절못하며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는 비서에게 ‘…아닙니다.’ 하고 말했다.



“이사님께선 안에 계십니까.”

“네, 방금 밖에서 돌아오셨어요….”



태형은 가라앉은 눈으로 알겠다 대답했다. 그리고 짧은 목례 후 자리를 벗어났다.



어쩌면 당연한 대가였다. 다인을 쏘지 못하고 지민을 맞추고 말았던 자신의 커다란 실수에 대한 대가.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경을 헤매는 지민이 깨어나지 못함에 따라 자신의 죄는 더 이상 ‘실수’라는 말도 가벼울 정도로 무거워져 있었다.



자신이 그때 왜 다인을 맞추지 못했는가, 에 대해서 태형은 할 말이 없었다. 아이는 분명 사정권 내에 들어와 있었고 아이를 맞추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어떤 상황인 줄 새까맣게 모른 채 천천히, 조심스럽게 제 아빠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자꾸만 망설이는 마음이었다. 지민에겐 다인을 봐주는 일이 그저 납치를 위한 일이었다고 말했지만, 그리고 처음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봐주던 일, 아이와 웃던 시간, 맑은 아이의 웃음, 그것에 위로받던 자신. 그 모든 것들 때문에 아이가 피투성이로 쓰러졌을 때, 제 자신이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을 거란 자신이 전혀 없었다. 땀에 찬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 옷에 슥 문지른 태형이 입술을 혀로 적시며 한 쪽 눈을 감고 렌즈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견착시킨 총이 탕, 하고 어깨에 충격을 주며 내보낸 총알은 결국 나무다리에 가서 박혔다. 그와 함께 아이의 주위로 총알이 날아온 것에 놀란 지민과 윤기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아이를 맞추려면 빨리 두 번째 탄환을 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탕, 하고 날아간 총알이 지민에게로 날아갔고 그대로 지민은 하릴없이 쓰러졌다. 렌즈를 통해 지민이 맞은 것을 본 태형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랬지, 하는 생각만 가득 차 머릿속을 둥둥 떠다녀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빠르게 총기를 챙겨 건물을 나오면서도 태형은 지민을 맞춘 것이 제 의지인지 실수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연습한 손이 무뎌질 리 없는데.



태형은 그때 생각을 하며 제 손을 응시하다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시작에 대한 기억을.



태형은 어느 창부의 아들이었다. 태형의 어미는 아비도 모른 채 저 혼자 배 아파하며 태형을 낳았고, 호적에 올리지도 않은 채 아이를 몇 년 간 키우다 어느 날 훌쩍, 사창가를 떠나버렸다. 그 어떤 흔적도 없이, 잠깐 머물다 간 바람 같이.



어미의 빚과 함께 홀로 남겨진 아이는 그곳에서 잡일을 하며 자랐다. 아직 어렸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던 데다, 손이 어리고 설어 누구나가 꿀밤이나 쥐어박는 구박덩어리였다. 처음 서러움에 몇 번 울던 아이는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음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눈물이 말랐다. 원래도 밝지 않던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더 과묵해졌고 아이의 눈엔 항상 어두운 그늘이 졌다.



그런 아이를 여주인이 어느 조직의 보스에게 팔아버린 건 태형이 10살쯤 됐을 무렵이었다. 



‘죽어도 상관없는 애 하나 구해줄 수 있어?’ 하는 말에 태형은 여주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 중 단연 1순위였고, 그렇게 본인은 연유도 모르는 채 사창가에서 조직으로 팔려갔다.



조직은 살인병기로 키울 아이를 찾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키워 실전에 투입하고 싶어 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기에 뒤탈이 없으면서도 아직 비판을 모르는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진 아이들을 원했다. 양쪽 눈을 가리고 달리는 말 같은, 그런 아이들.



태형이 그곳에서 배운 건 총질이 전부였지만 거꾸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태형에게 있어서 처음이었다. 배운다는 것이 그렇게 흥미로운 일인 줄 그는 처음 알았다. 그렇기에 여러 가지 화기의 종류와 그를 다루는 법을 배움에 있어 빠르고 뛰어났다. 그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눈을 뜨면 태형이 하는 일이라곤 그것뿐이었고 눈을 감기 전까지도 연습하는 태형이기에 빠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손으로 잡기엔 버겁던 총기들은 태형이 자랄수록 점점 손에 익숙해져 갔다. 태형은 총을 다루는 일에 너무 빠져들어서 마치 그게 없으면 못 사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늘이 가득했던 눈동자는 이젠 총을 들이대면 까맣게 빛났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절대로 실력을 배신하지 않았다.



태형과 함께 거둔 아이들이 성과를 보이자 조직에서는 이것을 아예 정착시키고자 했다. 그렇게 또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조직으로 들어오고, 그때 윗사람들의 눈에 뜨인 것이 정국이었다. 정국은 운동신경이 뛰어나 몸을 쓰는 일을 못하는 게 없었다. 맨주먹 싸움은 물론, 적들과 가까이 대치할 경우 백전백승이었다. 또한 전략가적인 측면도 있어 영리하게 싸움을 이끌어나가기도 했고, 리더쉽도 있어 자연스레 아이들의 중심에 섰다. 떡잎을 알아본 사람들은 정국이나 태형 등 눈에 띄는 아이들을 더 열심히 키웠다.



그러나 그게 독이 될 줄 그들 중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게 문제였다.



약육강식을 체화하며 자란 아이들은 어느 순간 윗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수도 많고 더 강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배운 대로 아이들은 바로 덤비기보단 자신들의 세력을 불려나갔다. 멍청하게 패기로 부딪쳤다간 날릴 먼지도 없이 무너진다는 걸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을 은밀하게 설득하고, 제 편이 되면 그 사이를 더 돈독히 했다. 이 과정에서 대표로 떠오른 게 정국이었다. 정국은 사람마다 설득하는 방법을 달리할 줄 아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태형에게도 그랬다.



‘어떻게 형 없이 이 일을 해내? 난 형 없으면 안 돼. 형마저 나 버리면 나한텐 아무도 없어. 형도 알잖아.’



정국의 말에 태형은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굳이 정국의 말들이 아니더라도 태형은 아마 정국의 편에 섰을 것이었다. 형, 형, 하며 방긋방긋 웃던 정국에게 어느 샌가 마음을 줘버린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미 자신의 손을 벗어난 일이었다.



얼마 후 쿠데타는 일어났다. 그리고 아이들의 계산은 맞았다. 그들이 더 강자였다. 비록 많은 피해를 봤지만 아이들은 이겼다.



정국을 조직의 우두머리로 올리자는 아이들의 말에 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새파랗게 어린 자신들이 어떻게 보일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전 윗사람들 중 가장 사람들에게 신임이 없는 사람을 골라 자신들의 위에 앉혔다. 이른바 ‘바지 사장’이었다. 그리고 조직의 누구도 그가 진짜 사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년원에서 퇴소한 정국은 팀장급으로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제 오른팔로 태형을 들였다. ‘형’이라는 호칭은 ‘태형 씨’로 바뀌어 거리감은 생겨나 있었지만 태형과 정국 사이의 믿음은 그리 달라진 바가 없었다. 태형은 정국이 소년원에서 있는 동안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름이 자자한 저격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실력은 그 소문을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태형 또한 제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어려서부터 지켜봐온 정국은 태형만큼이나 그의 실력에 대해 믿음이 강했다.



그렇기에 정국이 일부러 지민을 맞추지 않은 거냐 물었을 때 더 대답하지 못했다. 정국이 자신을 믿어준 데 대한 결과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처참했다. 태형은 자신을 위한 거짓말엔 재주가 없었다. 대답을 모르는 질문에 둘러댈 줄도 몰랐다. 그렇기에 태형은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침묵을 정국이 어떻게 해석하든, 태형은 그랬다.



그러나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해석된 모양이다. 이렇듯 자신을 곁에서 내치는 것을 보면. 태형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감돈다. 지민이 정국의 모든 것이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알면서도 시나브로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져 오는 것을 태형은 막을 길이 없었다.



*



윤기는 책상에 앉아 제 머리를 붙들었다. 지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눈을 뜨건 눈을 감건,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지민이 눈앞에 선연하게 떠올랐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처음으로 사람이 곁에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했는데. 그러면서도 말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 불쌍한 아이에게 답을 줄 시간도 없이 손도 못 쓰고 놓아줘야 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제 무능력함에 치가 떨렸다.



“하아….”



생각했던 대로, 다인과 지민을 납치했던 범인은 정국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데도 위험을 감수하며 윤기의 앞에 나타난 건, 그 정도로 정국에게 있어 지민이 중요하단 얘기였다. 그래, 그때 보였던 정국의 그 눈빛이 거짓일 수는 없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지민이 죽게 놔두지 않을지도 몰라. 정국의 손에 지민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에 윤기는 쓴웃음을 머금는다.



다인이 돌아왔고 아직 지민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유는 몰라도 정국은 지민을 굉장히 끔찍이 아낀다. 그렇다면 더 이상 자신은 무서울 게 없는 게 아닐까. 무슨 짓을 해도 지민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하던 윤기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정국이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직 그곳엔 지민을 쏜 저격수가 남아있었다. 그는 누구일까. 태형일까,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 그는 실수로 지민을 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지민을 맞춘 걸까. 그건 전자에 가까웠다. 지민이 다인을 향해 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만약 그것이 다인을 쏘는 척 지민을 쏴 버리기로 계산된 거라면…. 



“아… 안 되겠다.”



윤기가 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멍청하게 앉아만 있으면 지민은 구출될 수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 했다. 윤기는 다시 차근차근 BH 인더스트리 관련의 파일들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개인보다는 덩치가 큰 기업에 허점이 있기 쉬웠다. 샅샅이 살피면 분명 뭔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윤기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



“흐아…!”



정국이 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악몽이었다. 지민이 깨어나지 못한 채 제 곁을 떠나는 꿈을 꿨다. 하얗게 핏기 없는 지민의 얼굴에 얼마나 시달린 건지 제 이마에 식은땀이 촉촉했다. 소매로 이마를 닦아낸 정국은 급히 서랍을 뒤진다. 얼마 안 있어 이내 원했던 것을 찾은 듯 꺼내들고는 서랍을 닫았다. 주사기와 약병이었다. 익숙한 듯 고무줄로 팔을 묶고 제 팔에 주사를 놓은 정국은 다시 익숙한 모션으로 주사기를 빼 버린 뒤 제 이로 고무줄을 풀고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하아….”



얼마 지나지 않아 취한 듯 몽롱해지는 기분에 정국이 눈을 반쯤 감는다. 울렁이는 천장에 지민이 떠오른다. 우리 형. 우리 예쁜 형. 눈을 접고 예쁘게도 웃는 지민의 모습이 잡힐 듯 그려져 정국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허공으로 손을 뻗어 잡아보려 하지만 닿지도, 닿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형을 어떻게 가졌는데…. 내가 어떻게 형을 돌려받았는데….”



부정확해진 발음으로 정국의 입술에서 말이 샌다. 지민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몰라 처음 납치해서 가뒀던 그때, 시간이 지날수록 피폐해지는 지민의 모습에 정국은 지민을 탈출시켜 주기로 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탈출시켰다가 다시 데려오는 걸로. 그 정도의 아량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엔 정국이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양강회에서 지민을 탐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민을 남창으로 팔려고 하다니. 정국으로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거기다 뒤를 파보니 아예 양강회는 뒷돈을 만들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조직적으로 인신매매 사업을 하고 있었다.



결국 양강회를 없애기로 결정한 정국은 태형을 시켜 몰래 경찰에 신고를 넣었다. 그리고 정일찬은 제 스스로 찔러 죽였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일어났다. 정일찬의 방에 있던 캐비닛에 지민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캐비닛 안의 인기척에 정국이 ‘누구야?!’ 하며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엔 오들오들 떨던 지민이 있었다. ‘…지민이 형? 왜 거기 있…’ 하며 정국이 다가가자 지민은 갑자기 아악, 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살해하는 장면을 본 건가.’ 하는 끔찍하지만 예리한 예감이 정국의 머릿속을 스쳤다. 지민에 대한 복수심으로 일찬을 잔인하게 죽였기에 더 불안했다. 패닉 상태가 온 듯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던 지민은 갑자기 정국이 잡을 틈도 없이 그 방을 빠져나갔다. 바로 그를 찾아 달려 나갈 수도 없어 정국은 욕을 하며 제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은 일찬의 방을 정리하고 그의 시신을 항구에 끌어다 놓고 폭탄을 설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을 혼자 처리하겠다고, 따라오려는 태형을 놔두고 온 게 그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를 하고 나왔지만 지민은 간 곳이 없었다. 지민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정국은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하고 지민을 찾는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서야 지민이 경찰에게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몇 개월이 지나고서야 제 품으로 지민을 들일 수 있었는데… 그 지민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밉다, 진짜….”



원망스러웠다.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지민이. 지민의 마음을 얻을 줄 모르는 제 자신도. 이렇게 되길 바랐던 게 아닌데 상황은 항상 자신의 예상보다 최악으로 흘렀다. 그리고 지민이 다친 건 최악 중 최악이었다. 벌써 날짜가 많이 흘렀는데도 지민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담당의의 말에 의하면 ‘신체적 상태는 안정되어 있으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환자가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 표현일 수도 있다.’ 라고 했다. 정국은 그 말이 우스웠다. 의식을 잃은 환자도 의지가 있을 수 있나보네. 그리고 슬펐다.



“형은 깨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현실이 싫어…?”



지민을 얻으려 시작했던 일이라 지민을 갖지 못하니 동기부여가 힘든 건지, 비즈니스 쪽으로도 정국은 현재 최악이었다. 일에 집중하지 못한 지 벌써 몇 달 째인지 몰랐다. 얼마 전부터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말이 나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항상 태형이 그들을 잘 설득해 주는 것 같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제가 태형을 내친 터라 태형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김태형….”



태형을 생각하던 정국은 답답해져오는 마음에 눈을 감았다. 변하지 않는 태도, 언제나 충성스러운 사람. 너는 왜 그렇게 나에게 헌신하는가. 태형은 정국이 대표이사가 되는 데에 날개를 달아준 사람이었다. 태형 같은 실력자가 곁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태형이 모시는 정국에 대해서도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태형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뛰어난 인재였다.



그런 사람을 곁에 데리고 있던 정국은 가끔 못된 짓을 했다. 태형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이 지나치다 생각될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태형보다 모자란 상사라고 느껴졌다. 그게 정국은 불안했다. 그럴 때면 정국은 태형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가끔은 성적인 방향으로 표출될 때도 있었다.



처음 강제로 입을 맞췄을 때 태형은 눈을 깜빡이며 당황하고 있었으면서도 정국을 밀어내지 않았다. 정국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며 그의 페이스에 맞췄다. 태형의 뒷목을 잡아당겨 숨 막힐 만큼 깊게 입을 맞추며 정국은 그의 위에 있다는 정복욕에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행동들은 입맞춤으로 끝나지 않고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그건 정국이 지민을 데려오기 전까지, 아니 데려오고 나서도 정국이 기분 나쁜 날이면 종종 그런 일들은 일어났다. 그러나 태형은 한결같았다. 항상 화가 난 정국을 달래듯 따뜻한 제 체온을 나눠주었다. 그게 왜 이제와 의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국은 문득 궁금해졌다.



너는 내게, 왜 그러는 걸까.

내가 아니어도 넌 괜찮았을 텐데.



정국에겐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



+)

할 말이 많았던 이번 편... 재미없는 것 같아 걱정된다 8ㅅ8

글을 쓰며 거의 계속적으로(..) 떡밥들을 뿌렸고 할 수 있는 한 연결해 가고 있는데 글이 길어지니까 잊어버리는 떡밥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 수정 1회 (내용수정 X)


1. 태태가 남준이와 동화 얘기하다 자신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슴니다. 태태의 얘기는 거기에 대한 것. (10편) + 태태가 경찰의 지문감식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도 호적이 없어서 그런 거구요. (7편)

2. 지민이가 지난 번 기억을 잃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꾹이의 살인에 대한 목격입니다. 그때까진 그래도 짐니 안에 꾹이는 어린 동생이었는데 이 일로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었던 건데, 지난 번에 지민이가 '사실은 나, 내가 왜 기억을 잃었는지 기억이 안 나. 항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고 물었을 때 태태는 짐니가 폭발 사고를 처음으로 목격해서 기억을 잃었던 거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것은 꾹이를 위해서. (12편)

3. 태태는 짐니를 맞춘 게 다인이를 향해서 지민이 뛰고 있었기 때문에 실수로 맞췄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80%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20%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해요. 짐니가 꾸기의 전부이기에 어쩌면 자신이 질투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게 요번 글에 나왔어야 했는데... 읽어보니 나조차 모르겠길래... ㅠㅠㅠㅠㅠㅠㅠㅠ

4. 태태의 사랑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꾹꾹. 태태가 왜 그러는 지조차 이해를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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