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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슙] DADDY 07. 본문

국슙 : DADDY (完)

[국슙] DADDY 07.

몽블랑11 2016. 11. 25. 21:15

[국슙] DADDY 07.

w.몽블랑



*



어제 퇴근 직전, 회사에서 다른 부서의 여직원에게 고백을 받은 윤기는 퇴근길 내내 거절의 말을 생각했다. 부서가 멀어 얼굴을 자주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마주치지 않는 사람은 아니니 적당한 거절이 필요했다. 상처받지 않도록, 자존심 상하지 않게, 에둘러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말.



그러다 문득 윤기는 제가 습관적으로 사람을 거절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제 자신이야 성적 지향성이 다수와 달랐으니 거절하고 있다지만, 정국에겐 엄마가 필요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런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던 정국이지만, 속이 깊은 구석이 있는 아이이니 윤기에게는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정국도 엄마를 원했던 순간이 있었지 않았을까.



이 간단한 것을 조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에 해가 지는 도로를 달리던 윤기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심지어 원래 엄마가 있던 아이였으니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그걸 이제야.



고백 받은 이 여직원이 아니더라도, 일찍이 정국의 엄마를 찾아봤어야 했던 건 아닐까. 윤기는 집에 들어서면서도 무거운 마음이 들어 정국에게 쉽게 말할 수가 없었다. 고민고민하며 정국에게 물어볼 말을 찾던 윤기는, 결국 넥타이를 끄르다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국아. 혹시 엄마… 필요해?’



그 말에 아이는 크게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원망스레 자신을 쳐다보며 금방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정국은 금방 고개를 돌려 표정을 숨겼지만 그게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라서 윤기는 당황스러웠다.



‘정국아.’

‘…….’

‘전정국. 표정 왜 그래.’



아이의 입가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것도 같은데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정국의 눈과 표정은 수많은 말을 하는데,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윤기에게 말하고 싶은 수많은 생각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던 정국은,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 아직, 다 안 컸어요.’

‘…어?’

‘나 아직, 아직 아닌데…. 대디는, 대디는….’



감정을 누르기 힘든 듯 떨리는 정국의 목소리가 혼란스럽기만 했다. 상처받은 표정과, 아직 다 크지 않았다는 말.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윤기에게는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말해봐.’

‘…….’

‘전정국.’

‘…대디 마음대로 해요. 나는 신경 안 써도 돼요.’

‘야, 안 써도 된다니.’



네가 신경 쓰여서 꺼낸 얘긴데, 하고 말을 마무리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정국은 도망치듯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안방엔 윤기 혼자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차라리 나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역효과만 일으킨 것 같다.



아침엔 윤기가 일어나기도 전 학교로 가버린 정국이었다. 정국을 깨우려 방문을 열었을 때 텅 빈 방에 시끄러운 알람소리만 울려대는 모습을 본 윤기가 한숨을 쉬며 알람을 껐다. 피곤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린 윤기는 속이 쓰렸다. 정국과 함께 산다는 게, 정국의 생각을 안다는 게, 요즘 들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문제야, 도대체.”



사춘긴가. 이유를 모른 윤기가 내린 애매한 결론이었다.



*



- 모하냐. 엉아 니네 집 아페시다.



방과 후 집으로 와 제 방에 박혀 있던 정국을 밖으로 불러낸 건 태형의 전화였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오라가라 하기는, 하고 생각하면서도 정국은 금방 태형의 앞에 서 있었다.



“왔냐.”

“어.”



인사만 한 마디 건네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자꾸 먼 곳만 바라보는 태형이었다. 정국은 그런 태형에게 그리 인내심이 많지는 않았다.



“뭐야. 네가 나오라며.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

“어… 아. 박지민이, 박지민이 가보래서.”

“박지민이 가보래서 왔는데 너는 할 말이 없어?”

“아니아니, 나도 박지민이랑 똑같은 의견이었는데, 어… 너 오늘 좀 이상해따고.”



아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상해 보여따고. 말을 수정하는 태형에 정국이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을 했다. 박지민은 지가 올 것이지 왜 저걸 보냈지. 히이, 하고 웃는 태형의 얼굴에 한숨을 쉰 정국이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았다. 그러자 쪼르르 다가와 정국의 옆에 앉은 태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있냐?”

“…….”

“나는 무슨 일 있는데.”



한 마디를 뱉곤 배죽배죽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지 입가를 어쩔 줄을 모르는 태형을 정국이 한심하게 바라본다.



“뭐. 박지민이랑 사귀는 거?”



정국의 말에 태형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조금 있으면 데구르르 굴러 떨어질 것도 같았다.



“어, 어떠케…! 어떠케 알아써?!”

“…….”

“아! 박지민이 말했구나?! …어, 그런데 왜 나한테 얘기하랬지?!”

“박지민 말 안 했어.”

“그럼 어떠케 알아써?!”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 정국의 심드렁한 말투에 태형이 눈만 깜빡였다. 화해하고 올 때부터 핑크색 분위기 뿜뿜이던 두 사람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곁에 항상 붙어 있는 정국이 모르기는 힘들다 생각했는데, 태형의 입장에선 그도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나름 꽁꽁 숨겼다 생각했는지 정국을 보는 태형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했다.



“전정국 눈치 진짜 빨라!”

“…그래, 고맙다.”



영혼 없는 감사표시에도 태형이 웃었다. 원래도 웃음이 많은 태형이지만 벙긋벙긋 더 자주 웃는 게 정국의 눈에 나빠 보이진 않았다. 태형을 보며 빙긋이 웃던 정국이 이내 한숨을 쉬었다.



“연애 좋지. 우리 대디는 결혼한댄다.”



정국의 말에 태형이 더 놀란 듯 펄쩍 뛰었다.



“뭐? 갑자기? 너한테 말도 안 하고?!”

“안 그래도 물어보더라, 엄마 필요하냐고. 꽃다발 들고 들어오면서.”

“그래서 넌?”

“내가 뭐라 그러냐….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

“야, 넌 그걸… 그게 납득이 돼냐? 돼?”



납득이 되냐고? 어스름하게 해가 진 하늘을 쳐다보던 정국이 피식 웃었다. 둥그렇게 뜬 태형의 눈이 곁눈질로도 보일 정도로 커져 있었다.



“안 되면 어쩔 거야. 서운하지. 서운한데, 지금까지 나 키워주느라 자기 인생도 없었던 사람인데, 그걸 내가 반대할 수 있겠냐.”

“…그래도, 야….”

“…….”

“…….”



맞다. 태형의 말대로 정국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렇지만 결국 태형이 말을 줄였듯, 정국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간 윤기가 제게 해준 것을 생각하면, 그의 앞길까지 막아버릴 순 없는 것이다.



“야, 전정국… 내가 좀 미친 것 같긴 한데에.”



들려오는 태형의 목소리에 정국이 응, 하고 대답했다.



“너가 대디 되게 특별하게 생각하잖아. 막, 내가 보기엔 박지민이나 내가 우리 엄빠 대하는 거랑 좀 다르단 말야.”

“…….”

“너네 대디 좀 젊기도 하고, 어… 친아빠가 아닌 건 나도 알고.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음….”

“너도 내가 이상해?”

“…어?!”



태형의 놀란 표정에 정국은 픽 웃어버렸다. 언젠가, 태형이 꼭 같이 했던 말이었다. ‘왜. 너도 내가 이상해?’ 그리고 태형은 뒤이어 말했었다. 지금의 정국처럼.



“나도 내가 이상한데.”



그 다음 자신이 했던 말을, 태형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야 되는데. 아는데. 자꾸 그만 못 하겠어. 그게 이상하게 자꾸 안 돼.’



조그맣게 뱉어보았던 넘치는 제 마음들. 심란한 말을 뱉어놓고 표정의 변화가 없는 정국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태형이 더듬거렸다.



“내가… 이해한 게… 지금 맞냐…?”

“…어, 맞을걸.”



태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때 자신의 마음을 지극히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된 것이었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그게 누굴 향한 말이었는지, 잊어버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정국은 저보다도 더, 이룰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제가 정국을 알고 있던 사이가 아니라면 태형은 거리낌 없이 ‘미친놈이네!’하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국의 복잡한 얼굴을 보고서는 저도 입이 턱, 하니 막힌 것이, 제가 미쳤는지 정국이 미쳤는지 아니면 둘 다 미친 건지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흐어….”



외마디 신음 같은 소리를 흘리며 벙찐 태형을 두고 정국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나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하며. 올려다 본 정국의 뒤로 태형의 눈에도 검푸르게 물든 하늘에 별이 조금씩 박히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아, 아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응. 조금 있으면 대디 올 시간이라.”

“…그래, 가자.”



정국에게서 뭔가 이야기를 들으면 속이 좀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정국과 헤어지고 집을 향해 걸어가는 태형의 속은 오히려 더 복잡하기만 했다. 밤으로 물든 이 높은 하늘에 한숨을 뱉으면 조금 나아질까, 하고 푸우, 푸우, 숨을 내쉬어 보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아서, 태형은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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