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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슙] DADDY 11. 본문

국슙 : DADDY (完)

[국슙] DADDY 11.

몽블랑11 2016. 11. 25. 21:16

[국슙] DADDY 11.

w.몽블랑



*



윤기는 모니터를 응시하면서도 핸드폰을 힐끔거렸다. 일을 하는 도중에도 자꾸 핸드폰에 시선이 가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벌써 정국이 그 집으로 간 지 한 달이 넘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전화가 없다는 건 정말이지 이상했다. 누구든 한 번쯤은 전화를 해야 맞는 거 아닌가. 정국의 삼촌이든, 정국이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굴리던 윤기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 쪽에서라도 전화를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지금 뭐라고 말씀….”

- 걔 가출했다고요. 벌써 집에 안 들어온 지 꽤 됐어요. 지금 짐도 다 우리 집에 있는데 치우지도 못하고 나 참.

“혹시 학교는,”

- 아, 끊으세요. 걔만 생각하면 골치 아프니까.

“그럼 정국이가 갈 만 한 데라도,”

- 몰라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아, 됐고. 할 말 없으니까 끊어요, 끊어.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전화의 소음도 거기까지, 적막이 찾아왔지만 반대로 속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정국이 가출이라니,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윤기는 급하게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섰다.



*



학교로 도착해 정국의 담임교사를 찾아갔다. 마침 수업 시간이 아니었는지 자리에 있던 담임교사는 윤기의 얼굴을 기억하고는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했던 입시 설명회에서 단 한 명의 젊은 남자였던 윤기를 기억하는 건 그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정국이 보호자 분이시죠.”

“예, 선생님. 안녕하세요.”

“예, 예. 그런데 오늘 학교에는 어쩐 일로….”



정신없어 보이는 윤기의 표정에 담임교사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교무실 한 쪽의 소파로 윤기를 안내한 그는 주스를 따라와 윤기에게 건네며 다시 물었다.



“어쩐 일이세요, 여기까지. 정국이 무슨 일 있습니까?”



담임교사의 평화로운 얼굴이 윤기는 더 당황스러웠다.



“정국이, 학교는 잘 나오고 있나요?”

“…네. 정국이 항상 잘 나오고 있습니다. 학교 안 빠지고 잘 다니는 학생으로 아는데요. 몸도 건강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럼… 지금 학교에 있습니까?”

“네, 5교시 수업 중일 겁니다. 앞으로 10분 후면 쉬는 시간이니까 그때 만나실 수 있어요.”

“그렇습니까. 아….”



윤기는 그제야 한숨 놓은 듯 소파 뒤로 기댔다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담임교사의 시선에 벌떡 일어나 자세를 고쳤다. 그러자 담임교사는 껄껄 웃으며 편하게 계시라고 말했다.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단지 들어오실 때 표정이 너무 급해보이셔서, 정국이한테 무슨 일 있나 했죠. 저도 담임교사로서 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알고는 있어야 하니까요.”

“아….”



윤기는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한다면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정국이 가출을 했다고 들은 것부터? 삼촌에게 맡겨진 것부터? 제게 고백한 것? 그것도 아니면 정국이를 맡게 된 것부터? 무엇 하나 누구에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말을 고르다 곤란해 하는 윤기의 얼굴을 보던 담임교사는 ‘그냥 정국이가 걱정되셔서 그러신 거라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하고 웃었다. 윤기는 그저 그 말에 기대어 예, 죄송합니다, 하고 입을 다물었다. 윤기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담임교사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말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

“요즘 정국이가 수업 시간에 많이 잔다는 말이 있어서요.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러세요…. 애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건 워낙 흔한 일이긴 한데 정국이 같은 경우는 거의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아예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인데다, 평소에 안 그러던 애가 그러니까 과목 담당 교사들이 여럿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물론 제 시간에도 자는 경우가 요즘 늘었고.”

“…….”

“아버님도 모르시는 일이라면 한 번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윤기와 담임교사의 머리 위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가 울렸다. 담임교사는 교무실 한 쪽에 마련된 상담실을 안내해주고는 그곳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렸고, 그곳엔 그 동안 그렇게도 보고 싶던 정국이 서 있었다.



*



정국은 윤기의 얼굴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상담실 문을 조용히 닫고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윤기의 맞은편에 앉았을 뿐이다. 그 모습을 빠짐없이 응시하는 윤기의 표정에도 정국은 별 말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도 입을 열지 않는 정국에,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윤기였다.



“…잘 지냈어?”

“…….”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밥은 먹는 거야? 잠은.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응?”

“…….”

“정국아.”

“…….”

“대디랑 말 안 하고 싶어…?”



윤기의 떨리는 목소리에 정국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윤기는 비겁했다. 자꾸 마음 약해지게 저런 표정으로, 저런 목소리로. 윤기의 모든 것이 반칙이었다, 정국에게는.



테이블 밑의 주먹을 꾹 쥐며 정국이 차갑게 물었다.



“학교엔 왜 왔어요.”

“삼촌네 전화해 보니 네가 집에 안 들어온다고 해서, 나는 네가 없어진 줄 알았어.”

“안 없어졌어요. 학교 잘 다니고 있으니까 이제 돌아가요.”

“…정국아.”



윤기의 목소리가 일어나려던 정국을 붙든다.



“가지 마.”

“…….”

“대디랑 얘기 좀 하자.”



애원하는 어조였다. 정국은 되려 화가 났다. 이제 와 애원할 거라면, 이렇게까지 제 앞에서 당당하지 못할 거라면, 그때 자신의 얘기를 들어줬더라면 좋았을 걸. 도대체 윤기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윤기의 말에 따라 결국 자리에 앉아버리는 자신도, 모르겠다.



윤기는 정국이 자리에 앉자 조금 안심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어렵게 말을 고르던 윤기는 간신히 한 마디를 꺼냈다.



“삼촌네 집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지.”

“…….”

“왜 집에 안 들어 가. 사촌들이 괴롭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왜 안 들어가. 밖은 위험한데, 잠은 어디서 자고.”

“편의점 알바 구했어요. 심야 알바해요.”

“삼촌네 집으로 돌아가자.”



정국은 답이 없었다. 입 안에 대답을 꾹 문 채 입술을 열지 않았다. 그게 윤기의 눈엔 오늘밤도 밖으로 나돌 거란 말 같아서 불안했다.



“정국아.”

“거기 싫어요.”

“…왜.”

“거긴, 대디가 나 버린 데잖아요.”



정국의 말에 윤기는 심장이 바닥을 나뒹구는 것 같았다. 철벅, 하고 젖은 심장이.



“왜, 왜 그렇게 말해….”

“키우기 싫어졌으면 그 집에 갖다 두지 말고 차라리 날 길바닥에 버려요. 그 집에 맡겨놨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날 길바닥에 버렸다는 죄책감에 살아요.”

“…….”

“그렇게라도 나 잊어버리지 말아요, 대디….”



정국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얀색의 교복으로 덮인 어깨가 가늘게 떨려왔다. 주인에게서 버려진 강아지처럼 정국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했어요. 나를 좋아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알아달라고 했어요.”

“…….”

“내가, 내 목소리가… 아빠랑 닮았다면서요. 그걸로라도, 나를 곁에 두면 안 돼요…?”



잊어버리지 않았어, 조금도.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 없어. 윤기는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정국은 저와 모든 연락이 끊긴 채 지냈고, 그간 정국은, 이런 생각들을 하며 그 시간들을 힘겹게 보내왔던 것이다.



처음이었다. 정국의 외로움을 윤기가 마주한 건. 발밑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바닥없는 물에 빠져 가라앉아 허우적대며 누군가에게 손이라도 잡아 달라 애원하는 외로움 앞에서, 윤기는 제가 물속을 가라앉는 정국을 마냥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 같아서, 한 없이 괴로워졌다.



이젠 인정해야 했다. 이미 너무나 자신을 닮아버린 정국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윤기가 길러서, 윤기가 부모 역할을 대신 했기 때문에 닮은 게 아니었다. 둘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닮아있었다. 그 지극한 외로움이 정국에게서 윤기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저 외로움을 없애주는 방법은 정국에게 엄마가 될 사람을 구해주는 것도, 윤기 자신이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정국을 아낀다면, 윤기는 정국의 이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마주할 필요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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