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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슙] DADDY 27. 본문

국슙 : DADDY (完)

[국슙] DADDY 27.

몽블랑11 2016. 12. 9. 00:44




[국슙] DADDY 27.

w.몽블랑



*



정국은 태형을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번 만났던 술집으로 태형을 불러낸 정국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은 태형을 맞이했다. 밖이 추운 듯 코트에 손을 넣고 몸을 있는 대로 웅크린 채 술집으로 들어선 태형이 정국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 있어?”



태형이 동그란 눈으로 정국에게 물었다.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나 말고 우리 일이야.”

“우리?”

“일단 너 술, 마실래?”



평소대로 정국이 태형에게 물으며 술을 주문하려는데 태형이 손사래를 쳤다.



“나, 나 술 오늘 안 마시고 들어갈 거야.”



그러자 정국이 놀란 얼굴을 한다. 그 정국의 놀란 표정이 뿌듯해서 태형은 히이, 하고 웃었다.



“오늘 형이랑 술 안 마시기로 약속하고 나왔어. 나 진짜 술 안 마실 거야.”

“형이 누구야. 저번에 사귄다는 사람?”

“어.”



또 태형이 배죽 웃는다. 정국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종업원을 불러 자신이 마실 만큼만 주문했다. 태형은 코를 손으로 살짝 문지르고는 정국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정국은 주문했던 술이 먼저 나오자 제 잔에 따르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박지민 얘기야.”



지민의 이름에 태형의 몸이 티가 나게 굳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금방 어, 하고 말했지만 석진의 얘기에 올라가 있었던 입꼬리는 굳게 일자를 그리고 있었다. 정국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늘 어쩌다가 박지민을 만났어. 그런데 아무래도 박지민이랑 사귀는 사람 정상이 아닌 것 같아. 박지민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를 못해. 나랑 얘기도 못하고 계속 손톱 씹으면서 불안해 하다가 누구한테서 전화 오니까 거의 도망치듯 집으로 가버렸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태형은 말이 없었다. 정국은 그런 태형의 반응이 답답했다. 정국이 화를 내기 전, 태형의 입술이 열렸다.



“우리가 뭘 해줄 수 있는데.”



정국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정국은 한 번 더 말했다.



“네가 못 봐서 그래. 박지민 진짜 위험해 보였어. 지금 걔 상황 정상 아니라고.”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범위 아냐.”

“너희가 연인이 아니라도, 적어도 아직 우리가 친구라면 뭐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친구에서 연인으로 갈 수는 있어도 연인에서 친구로 돌아갈 수는 없어. 그래서 우린 친구 아니야. 지금 애인이랑 사이에서 있는 일을 내가, 상관할 수는 없어.”



태형은 정국과 눈을 맞추지 않았다. 다만 말투는 단호했다. 정국은 그런 태형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네 멋대로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마, 절대로.”



정국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로 던지고는 가게를 나가버렸다. 태형은 정국이 나가고서야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집어든 그것을 태형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지민과 찍었던 사진의 일부였다. 사진에 찍혀 있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태형의 얼굴은 지민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이 처참하게 찢겨져 그 조각이 정국의 손에 들려 있었다.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던 태형은 앞자리에 놓인 정국의 술과 술잔을 가져와 제 앞에 따랐다. 그리고 잔을 들기 전 석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나 오늘 형네 집으로 못 갈 거 같아. …아냐, 여기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그래. 나 그냥 오늘 우리 집으로 갈게. 기다리지 말고 자. …잘 자. …미안해. 응.”



*



“박지민에 대해서 아는 거 다 말해.”



아침부터 정국의 집으로 찾아온 태형의 말이었다. 정국은 어이가 없어 픽 웃어버렸다. 태형의 핏발선 눈과 아직도 풍기는 술 냄새가 어젯밤을 태형이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어제 술집을 들어올 땐 멀쩡했던 코트가 하룻밤 사이에 여기저기 구겨져 있었다. 정국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말, 하라고. 박지민 사는 데, 연락처, 뭐든! 뭐라도 아는 거 있으면 말해.”

“아무것도 몰라.”



정국은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자 문 안으로 발을 끼워 넣은 태형이 그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정국은 자신을 쳐다보는 태형의 표정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정국은 한숨을 쉬며 현관문을 열었다.



“…일단 들어와. 너 지금 꼴이 말이 아니야. 씻고 좀 쉬고 나면 알려줄게.”

“급하다며. 박지민 위험하다고 했던 건 너잖아!”

“어, 급해. 그러니까 빨리 씻고 쉬어. 네가 지난 밤 무슨 걱정했는지 알아. 실제로 눈으로 본 나는 어떻겠어. 그렇지만 이렇게 걱정만 앞서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이대로는 사고나 치지 박지민 못 구해. 빨리 씻고 냉정해져. 난 그때 말할 거야.”



금방이라도 거친 행동이나 말을 할 것 같았던, 들짐승들의 날것의 눈을 내보이던 태형은, 정국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정국의 집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곤 거실을 걸어가며 욕실의 위치를 물었다. 현관문에 서서 턱으로 방향을 알려준 정국은 겉옷을 벗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태형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



윤기는 지은에게 당분간 바빠서 못 만날 것 같다고, 결혼식 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에게서 즉답은 없었다.



지난 번 호텔에서 일어났던 아침, 지은은 의외로 먼저 체크아웃하지 않고 자신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윤기가 씻고 그녀와 맨 얼굴로 마주했을 때, 그녀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돌아섰다. 그리고 호텔에서 나와 그녀의 회사에 데려다 주고 헤어지며 윤기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미안하다고. 그녀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기의 머릿속엔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던 그녀의 얼굴이, 대답을 하지 않는 그녀의 표정이, 이상하게도 자꾸 남는 것이었다. 윤기는 그녀의 그 표정들이 마치 제 자신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남았는지도 모른다.



윤기는 메모를 써서 ‘여기 써 있는 대로 예약해줘요.’ 하고 부하 직원에게 부탁한 뒤 겉옷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만날 사람이 있었다. 아주 중요한 만남이.



정리가 필요했다.



*



태형은 정국이 건네 준 번호를 보고 또 봤다. 태형이 외우고 있는 지민의 집 번호나 원래 갖고 있던 핸드폰 번호와는 전혀 다른 번호였다. 이 번호마저도 그 남자가 정해준 걸까. 핸드폰 번호마저 제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얼마만큼의 독점욕을 갖고 지민을 보고 있을까.



정말 이상했던 건 정국이 번호를 건네며 했던 말이었다.



‘절대로 전화하지 마. 알고만 있어.’



전화번호를 건네며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게 너무나 아이러니했다. 태형이 왜?, 하고 물었지만 정국은 모른다고 했다. 그저 지민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원하지 않느냐고 묻자 정국은 거기까진 모른다고 했다. 



정국이 지민을 만났다고 했던 곳의 골목 구석에서 태형은 지민을 기다렸다. 언젠가 지민이 나오면 그와 이야기를 해볼 참이었다. 지민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면 좋으련만, 정국이 지민을 마주친 곳이 건물이 빽빽한 원룸촌이라 골목이라도 특정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골목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해가 뜨고 짐에 따라 온도 차이가 심한 계절이었다.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해가 져버리자 태형은 오늘 하루 정도는 지민이 밖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도 그 자리에 서서 달이 중천에 뜰 때까지 서 있다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틀째가 되고 사흘째가 되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태형은 골목을 나흘째 지키던 날 밤을 새기로 결심했다. 지민은 제가 알고 있는 성격 상 며칠씩이나 집밖을 나가지 않는 성격이 아니었다. 잠이 많아 밤에는 잘 나가지 않는 지민이었기에, 낮동안 그것도 며칠씩 지민의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태형을 더 불안하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최악의 생각을 하다 생각을 돌리려 핸드폰을 꺼내든 태형이 액정에 뜬 지민의 번호를 만지작거렸다. 전화 한 통이면 그렇게 보고 싶은 너를 만날 수 있을 텐데. 태형은 여보세요, 하던 지민의 목소리를 생각하다 빙긋이 웃었다. 그 솜사탕 같았던 부드러운 목소리가 조금 듣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액정에서 손가락을 떼었을 때 태형의 핸드폰은 지민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연결하고 있었다.



‘절대로 전화하지 마.’



다급해진 태형이 황급히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급한 손가락은 커다란 통화 종료 버튼조차 제대로 누르지 못하고 애먼 곳을 찔렀다. 식겁해서 간신히 통화를 종료시킨 태형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차라리 한 번 더 전화해서 지민에게 무슨 일이 없었냐고 물을까,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을까. 전화 기록이 없었던 일인 것처럼 이쪽에서 삭제할 수는 없나. 태형은 제 실수를 탓했지만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태형이 가져온 우산은 가랑비쯤은 어렵지 않게 막아주었다. 귀찮아도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어느 빌딩에서 나온 누군가가 흐트러진 발걸음으로 골목을 몇 발짝 걷다 푹 쓰러졌다. 태형은 작게 나는 소리에 그 사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방 일어날 것 같던 그 사람은 쓰러진 채 미동도 없었다. 불안한 예감에 태형은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여보세요, 괜찮으….”



엎어진 사람의 어깨를 잡고 살며시 돌려 그의 얼굴을 확인한 태형의 얼굴에 절망과도 같은 빛이 떠올랐다.



“살려, 주세요… 미, 밑에서 피가 안 멈춰요…. ㄷ와… 주세요….”



실낱같은 목소리로 몇 마디 말을 남기지 못하고 잠에 들 듯 정신을 잃어버린 그는, 태형이 지금까지 밖으로 나오길 그토록 기다리던 지민이었다. 태형이 손으로 받친 그의 다리 사이가 축축해 태형이 제 손을 들여다보자, 묻어나온 피가 가로등 불빛에 선명했다. 



지민을 볼 수 있길 바랐지만, 절대로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핏기를 잃고 하얗게 질린 지민을 꽉 안은 채 태형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비를 막아주던 우산이 골목 끝에서 주인에게서 놓쳐진 채 뒹굴고 있었다.



*



+)

하루에 두 편! ...해보고 싶었지만...FAIL ㅠㅠ

야금야금 수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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