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랩뷔장편 (10)
외딴 섬 같은 나도
[랩뷔국] 막장드라마 10.w. 몽블랑 * 해는 이미 진 지 오래였다. 소파에 앉아 제 손톱을 물어뜯던 태형이 문득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본다. 이미 10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테이블에 놓인 산부인과 이름이 적힌 종이봉투에 시선을 두다 이내 떼어냈다. 켜놓은 TV 소리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백색소음이 되어 공간을 부유하고 있었다. 다시 입술로 손톱을 가져가던 태형이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흠칫 몸을 떤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배에 손을 갖다 댔다. 의사가 말한 것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임신은 위험한 것이라 임신 내내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 초기엔 여자든 남자든 더욱 위험한 것이라 했다. 언제든 조산의 가능성이 있어 몸조심을 하라 했음에, 태형은 제가 깜짝 놀란 것으로 혹시나 ..
[랩뷔국] 막장드라마 09.w.몽블랑 * 태형은 남준의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드문 VIP용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누른다. 다른 엘리베이터완 달리 VIP층만 운영하는 덕에 빠른 엘리베이터가 내려와 태형의 앞에서 문을 열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들어가 태형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남준이 있는 층을 익숙하게 눌렀다. 남준의 사무실에 들락날락한 지도 벌써 한두 달쯤 되니 이쯤은 눈감고도 할 수 있었다. 출입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간다. 상무실의 문 앞엔 언제나 그렇듯 차분한 옷차림의 호석이 서 있었다. 호석은 항상 고개 숙여 인사하며 상무실의 문을 열어주지만, 태형은 그의 앞을 지나갈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호석의 어두운 갈색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그의 시선이..
[랩뷔국] 막장드라마 08.w.몽블랑 ※ 중간에 수위 있습니다. * “아빠… 안녕?” 지민이 물을 떠온 사이 정민이 정신이 들었는지 지민을 향해 웃었다. 다신 못 볼 것 같았던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저를 향함에, 지민은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것을 어금니를 꽉 물어 참는다. 아이가 깨어났다고 마냥 기뻐하기엔,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몇 번이나 있을지에 대한 공포가 지민을 누르고 있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하지만 지금은, 다시 깨어나 준 아이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선 안 된다. 물통을 제 옆에 놓고 지민이 침대 옆에 앉아 바늘 상처투성이인 아이의 손을 조심스레 잡는다. 입가에 조심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속삭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민이 아이에게 물었다. “정민이도 안녕. 잘 잤어?”“응, 잘 자써.”“숨 쉬는..
[랩뷔국] 막장드라마 07.w.몽블랑 * ‘정국, 정국아. 정국아…!’ 한 새벽의 고요함을 깨며 울려온 핸드폰 소리에 이름도 확인하지 못하고 전화를 받은 정국의 귀로 다급한 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정국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그의 이름만 불러댔다. 넋이 나간 지민의 목소리에 정국은 머리를 스치는 예감에 심장이 떨어진다. 옆자리에 잠이 든 태형을 확인한 정국이 슬며시 침대에서 나와 안방 문을 닫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정민이 무슨 일 있어?”- 내가, 내가 전화 안 하려고 했는, 했는데… 정민이, 정민이가…. 정민… 하으, 제발 와줘…. 정국아, 정국아….“정신 차려, 박지민. 네가 지금 이렇게 정신이 나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흐으, 으으….“…지금 갈게. 지금 갈 테니까 기다려. 얼마 ..
[랩뷔국] 막장드라마 06.w.몽블랑 * 정국이었다. 틀림없이 제 남편인 정국이 맞았다. 안겨있는 사람의 얼굴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가로등 빛을 맞고 있는 정국의 얼굴은 3층에 입원해 있던 태형의 눈에 얄궂을 만큼 잘 보였다. 붙박인 듯 그곳만 쳐다보다 간신히 돌아섰다. 안색이 안 좋아진 태형을 붙잡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입단속을 철저히 시킨 정국의 어머니 덕에 태형은 부모님도, 그 어떤 친한 사람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킨 정국의 어머니 또한 그림자조차 비추지 않았다. 지극히 혼자였다. 저 혼자 수술 후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정국에게는 친구와 2주 간 여행을 갈 거라 말해뒀었다. 정국은 누구와 가느냐조차 묻지 않았다. 그저 잘 다녀오라던 정국의 웃는 얼굴이 제게 이런 배신감을 안겨줄 ..
[랩뷔국] 막장드라마 05.w.몽블랑 ‘얘, 집에 있니? 나 좀 보자. 외출할 준비하고 기다려라.’ 불쑥 걸려온 정국의 어머니로부터의 전화는 어디로 나갈 건지 말해주지도 않은 채 외출 준비하라고 말만 남긴 뒤 끊겼다. 벙찐 얼굴로 핸드폰을 들고 서 있던 태형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소파 등에 머리까지 기댄 태형이 천장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형 오늘 못 만날 거 같아’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 ‘왜?’ ‘정국이 어머님이 부르셔’‘오늘 만났으면 하신대’ - ‘아’- ‘아쉽다’- ‘시간 될 때 연락해’- ‘꼭’ 남준의 메시지에 태형은 ‘응’ 하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하기 어려운 상대를 만나러 가야 하는 태형의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 정..
[랩뷔국] 막장드라마 04.w.몽블랑 * ‘우리 아가… 아파. 많이. 너에게 말한 적도 없을 거야. 계속 말하지 않으려고 했어. 부담스러울 테니까.’ ‘선천적인 심장 기형이래. 나도 처음엔 몰랐어. 얼마 전에 숨소리가 이상한 것 같아서 병원에 데려갔었는데, 그때 검사하면서 알게 됐어.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그때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 ‘백방으로 찾아다녔어. 우리 아가 심장 낫게 해줄 수 있는 곳. 해외에도 없는지, 대학 병원 교수님한테 빌고 또 빌었어. 그런데 어디에서든 다 그러더라… 손을 쓰기엔, 너무 늦었대.’ ‘하다못해 심장 이식도 알아봤었어. 나, 나라도 주려고 했었어. 나라도 줘서 우리 정민이 살 수 있으면…. 그런데 어른 심장은 아가한테는 너무 크대. 정국아. 우리 아가 아직 이렇게나 작..
[랩뷔국] 막장드라마 03.w.몽블랑 “태형아.”“…남준이 형?”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에 태형이 놀란 얼굴을 하다 눈을 접고 웃는다. 남준이 걸어와 그런 태형을 껴안는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안겨 조금 당황하던 태형도 이내 웃으며 남준의 등을 토닥였다. 실로 몇 년 만에 만난 것인지도 모를 두 사람이었다. ‘안녕?’ 항상 사탕을 건네주던 남준의 어린 시절이 기억났다. 그럼 히이, 하고 웃으며 겁도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서 건네받은 사탕을 까 입으로 직행시키는 태형이 있었다. 그런 태형을 신기한 듯 웃으며 보던, 어렸던 남준. ‘태형아. 나 미국 가게 될 것 같아.’‘미국? 와아.’‘너도 공부 열심히 해서 미국으로 가자.’‘나? 난 그럴 머리가 아냐. 형도 알잖아.’ 배시시 웃던 태형의 얼굴을 어딘가..
[랩뷔국] 막장드라마 02.w.몽블랑 ※ 수위 약하게 있습니다. * 딩동, 하는 초인종이 울렸다. 집안을 대충 정리해두고 소파에 누워있었던 게 잠시 잠이 들었던 듯 했다. 깜짝 놀라 튕기듯 일어나 인터폰을 받아보니 화면에 뜨는 사람들은 더 놀라운 사람들이었다. “아 어머님, 오셨어요.” 정국의 어머니였다. 정국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정국을 힘들게 기르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할 말을 가감없이 모두 하는 성격으로 결혼식 때도 태형의 부모에게 ‘저희 애가 남자랑 결혼한다 그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남자는 전 좀 별로예요. 그런데 데려온 걸 보니 애가 좀 기집애같이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더라고요.’ 하고 말해 태형도, 태형의 부모..
[랩뷔국] 막장드라마 01.w.몽블랑 세상은 변한다. 변한다는 사실 말고는 모든 게 변한다. 과학은 발전하고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하며 그에 따른 사회 현상들도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작금의 생명과학 기술이란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남자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졌다. 임신과 출산에 있어 현재 수수께끼란 없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아이를 갖는 것은 물론, 남자가 아이를 임신하는 것, 또한 동성 간의 임신도 가능해진 세상이 되었다. 그로 인해 여자와 남자는 아이를 갖는 데 있어 모두 똑같은 권리와 똑같은 의무를 동시에 지게 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성 역할을 뒤집어엎는 센세이셔널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일반적이지는 않듯 현재로서도 다들 생긴 대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많았다. 그것이 비용적으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