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국슙] 세상의 끝 01. 본문
아무도 우릴 모르는 곳으로 가자.
세상의 누구도 우릴 볼 수 없을 만큼 멀리 가자.
이 세상의 끝으로.
[국슙] 세상의 끝 01.
w.몽블랑
*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게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었다. 우리 형이 왜 죽게 되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형을 잃고 쓰러지도록 울었던 내게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기억을 없애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집안 분위기는 매일 같이 우울했고, 몇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말이 없는 외톨이로 자라났다. 불행은 바깥이 아닌 안으로부터 왔다.
‘너 때문에 사는 거야.’ 라는 말을 부모님께 수십 번씩 들으며 자랐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는 누구 때문에 살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
그런 내게 처음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생겼던 건 그였다. 집으로 가기 위해 또 다시 들어온 어두운 골목길에서 운이 없게도 기분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마주쳤고, 나는 그들의 주먹과 발에 몸을 맡긴 듯 얻어터졌다. 이제 이 짓도 이골이 났다 할 때쯤, 가까운 곳에서 커다란 사이렌이 울렸다. 그 주위를 순찰하던 경찰차였다.
그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적고 계도해서 지구대로 보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닥에 쓰러진 내게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고 혼자서 일어섰다. 나를 바라보던 그는 손을 되가져가고는 내게도 이름을 물었다.
‘제 이름은 왜요?’
‘피해자로 신고 올리려고.’
‘전 괜찮아요.’
나의 대답에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모자챙에 가린 눈 때문에 그의 표정이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다시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이웃 신고로 들어온 거라 어차피 적어야 하니까 협조해 주시죠, 학생. …이름.’
‘…전정국.’
‘학교랑 학년, 반.’
‘세울고등학교 3학년 7반.’
‘…협조 감사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짧은 인사 후 사라진 그가, 며칠 후 다시 그 자리에서 나를 또 구했다는 것에 있었다.
또 바닥에서 밟힌 채 옷을 털고 있는 내게 그는 손을 내밀었다. 지난번에 잡지 않았던 것을 또 내미는 심보를 알 수는 없었으나, 나는 이번엔 그를 무시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옷은 대충 털어진 것 같아 등에 맸던 가방을 내려 털었다. 그게 끝나자 그는 내게로 다가왔다.
‘이름 물어보려고요?’
‘…전정국. 아냐?’
기억력도 좋다 생각했다. 그는 내게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왜 이 길 자꾸 지나가는 건데, 지난번에도 당했으면서.’
나는 손가락으로 이 골목 저 끝에 박힌 집을 가리켰다.
‘저기가 우리 집이라서요. 길이 이거밖에 없어요.’
그는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가려는 나를 붙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지구대 들러서 가. 집 앞까지 같이 가줄게.’
참으로 쓸데없이 여유로운 공무원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경찰서 △△지구대 순경 민윤기. 나는 명함에 있는 그의 이름을 스캔하듯 쳐다보곤 흘리듯 예, 하고 말했다. 이 정도면 그도 내가 그와 갈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들었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가지 않았다가 집 앞 골목길에서 맞아서 그의 앞에서 거하게 피를 토하고 난 후, 그는 지구대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내가 보이면 함께 집으로 갔다. 어찌나 눈이 좋은지 그 어두운 가로등 빛으로도 나를 단번에 찾아내어 옆에 서 있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는 내 옆을 걸어주었다. 가끔 집에 들어가기 전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그는 나를 바라보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혼자였던 내 옆에 누군가 처음으로 있어주는 사람이 생겼다.
*
여름방학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어와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다. 고 3의 여름방학 같은 것이었다. 있어도 있는 것 같지가 않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지금 이 여름방학, 지금 이 바람.
방학 동안엔 그 순경―형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보충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땐 해가 지지 않아 골목길이 어둡지도 않았고 그곳을 점령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었다. 지구대를 들러볼까 했으나 그럴 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를 못 본지 벌써 2주는 되었다.
그런 내가 우연히 찻길 너머로 시선을 던졌을 때였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건너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제복을 입고 있지 않아 눈에 설었지만, 분명 그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이 넘쳐 나도 모르게 그를 ‘형!’ 하고 불렀다. 그는 처음엔 쳐다보지도 않았으나, 내가 반복해서 ‘형, 형!’ 하고 부르는 바람에 주위를 두리번대다 나를 발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나를 보며 픽 웃고는 작게 손을 들었다.
무언가 말을 걸려 그에게 가기 위해 무단횡단을 할 준비를 하자 그가 제법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위쪽의 횡단보도를 가리켰다. 아, 정말. 경찰 만나기 힘드네. 내가 위로 빙 돌아 횡단보도를 건너올 때까지 그는 어디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나를 기다렸다.
‘어디 가.’
‘집에요. 학교 끝났어요.’
‘요즘은 이상한 애들 없고?’
‘네.’
‘다행이네.’
‘형은 어디 가요?’
‘나도 집. 퇴근해.’
퇴근….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찾고 싶었는데 더 가져올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금은 왜 방학일까. 함께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걸 찾는 나도 이상했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그와 헤어지기 싫어서 초조했다. 너무 오랜만에 봤나. 지나치게 반갑다. 그러자 형이 내게 물었다.
‘집에 가서 저녁 먹어야지?’
‘네.’
‘혼자 먹어?’
‘그렇죠, 보통.’
‘오늘도?’
‘네.’
‘그럼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아, 라면… 예? 라면? …네?’
얼빠진 대답에 형이 커다랗게 웃었다. 나는 TV에서 봤던 그런 뜻인가 아닌가 고민했다. 그가 내게 그런 개그를 던질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앞에서 입동굴을 보이며 하얗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면 착각이 드는 것이다.
‘집에 라면밖에 없어서 그래. 혼자 먹으니까 물려서. 같이 먹자고.’
‘아… 아, 전 좋아요.’
‘그럼 타.’
그가 리모컨을 누르자 지구대 옆에 있는 주차장에서 그의 차가 번쩍대며 소리를 냈다. 형 차예요? 하고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지 않은 하얀 차 안엔 그의 신발이나 옷이 걸려 있었다. 그는 조수석에 있던 것들을 뒷좌석으로 넘기고 내가 앉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배려가 굳이 싫지는 않았다.
‘형 집 멀어요?’
‘아니. 차로 얼마 안 걸려. 걸어서 가기엔 좀 먼 거리고.’
‘아아… 그럼 형 혼자 살아요?’
‘응. 고향은 여기가 아니라서, 부모님이랑 따로 살아.’
‘와… 좋겠다.’
나도 따로 살고 싶다, 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 내 뒷말이 읽혔는지 그가 푸스스 웃었다. 그러나 내겐 웃을 수 없는 얘기였다. 잠시 말이 없다가 빨간 불에 차가 섰고 나는 또 생겨난 궁금증을 그에게 물었다.
‘근데 왜 형은 혼자 밥 먹어요? 여친 없어요?’
내 말에 그는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나를 흘끔 본 그가 초록신호로 바뀌는 것을 보고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여친? 넌 여자친구 있으면 매일 저녁 걔랑 밥 먹어?’
어…? 좀 이상한가? 내 혼잣말에 그가 웃었다. 나도 그냥 웃어버렸다. 여친 안 사귀어 봐서 저도 몰라요. 하고 말하자 그가 놀란 듯 물었다.
‘여자친구 안 사귀어 봤어?’
‘…네.’
‘이상하다, 너 잘생긴 것 같은데.’
그의 칭찬이 가볍게 들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나를 붕붕 띄운다. 구름 같은 곳에 나를 얹어놓고 푹신한 손바닥으로 나를 통통 쳐올리는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헤죽헤죽 웃고 있으니 그런 나를 곁눈질로 확인한 그가 픽 웃었다. 오늘 그가 웃는 걸 많이 본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경찰 윤기 X 학생 꾸기
이것도 가볍게 올려봅니다. 글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ㅠㅠ 얘도 길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핸드폰 뚜들뚜들하다 나온 글이라서^ㅁ^;
제목은 영화 'HAPPY TOGETHER'에서.
비하인드 대디는 천천히 갈게요.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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