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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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민] 아내 장례식 끝난 낮누 x 아내의 남동생 짐니
w.몽블랑
시간은 밤 열한 시였다. 시야는 공허했다.
집은 아직 그대로였다. 혼비백산해서 집을 나간 뒤로 건드린 게 없었으니, 분명 바뀐 게 전혀 없을 텐데도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없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집안의 공기조차도 차가웠다.
*
젊은 나이에 비명에 생을 마감한 가엾은 내 아내는 그 흔한 교통사고 사망자 중 한 명이었다.
그날 저녁 먼저 퇴근했던 건 나였다. 퇴근 중인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니 자기가 식당을 들러 사오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먼저 나가서 사올 테니 집으로 그냥 들어오라 했지만, 그녀는 이미 식당 근처라며 가볍게 이따 보자고 말했었다.
그렇게 끊긴 전화는, 한 시간 후에야 구급대원에 의해 다시 걸려왔다.
‘많이 놀라셨겠지만, 일단 진정하시고요. 지금 ○○병원 응급실로 이송중입니다. 아내분께서 버티시고 계시니 빨리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땐 너무 놀라서 ‘버틴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못 들었을지도 모른다. 들어도 이해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경황없이 택시를 타고 도착한 그곳엔 피투성이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는 내게 무거운 얼굴로 무거운 말을 건넸다. 수술을 해도 성공적이기 어려우며, 성공했다 해도 뇌사 상태에 빠질 확률이 높고, 그 후로도 며칠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내는…….
*
허망하게도 아내는 수술 도중 사망했다. 그녀의 얼굴에 하얀 천이 씌워져 수술실을 나왔다. 하얀 천 아래에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이 아직 따뜻해서, 나는 다리가 풀려 침대 아래로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다.
이렇게 떠나버릴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누나….”
준비 없이 떠나보낸 이별에 내가 오열하며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병원 복도 끝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아내의 남동생, 박지민이었다.
*
그녀와 이란성 쌍둥이인 그는 ‘이란성’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그녀와 닮았다. 그녀는 여기도 다르고, 저기도 다르다고 얘기했지만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의 동글동글한 이목구비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비슷한 얼굴, 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는 가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처음엔 그냥 잘 웃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귀여운 남동생처럼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했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를 쳐다보는 눈이 유난히… 질척였다. 더 적확한 단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쳐다보는 그 끊임없이 달라붙는 그 물기어린 시선이 내겐 그랬다. 불편했다.
아내가 가족을 소개시켜주던 첫날에 나와 아내의 주위를 돌며 방글방글 웃으며 이야기해서, 처가댁 식구들이 ‘지민이 원래 엄청 낯가리는데 자기 매부 생겼다고 엄청 좋은가보네.’ 하고 말했었는데, 그땐 그게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었다.
그는 가끔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하고, 와서 절대로 폐가 되지 않을 만큼 놀다갔다. 항상 예의도 바르게 굴어서 우리는 그와의 시간을 즐겁게 여겼다. 가끔 처가의 부모님께선 그런 그에게 남의 신혼집에 그렇게 놀러가는 거 아니라고 잔소리를 하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와 아내 두 사람 다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차츰 그와의 대면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시선 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도 있었다. 지나치게 아내와 닮은 그 얼굴이 나를 쳐다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게 나는 이상했다. 웃을 때 길고 곱게 휘는 눈꼬리와 방긋 벌어지는 도톰한 입술과 그 경쾌한 소리까지. 그를 보고 있는 내 기분은 좋지 않았는데 그는 항상 그렇게 웃었다. 그게 가끔 속이 뒤틀렸다.
그도 나를 볼 때마다 기분이 더러웠으면, 하고 생각했다.
*
장례식을 지내는 3일 내내 그는 내 옆자리를 지켰다. 조문객들이 헌화를 하면 우리는 맞절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첫날엔 장모님이 쓰러지셨었고, 염을 하던 날엔 그마저 울다 쓰러져 하루도 울음소리가 잦아들 날이 없었다.
장례사는 나와 함께 식사하며 조심스럽게 ‘비명에 가신 분들의 장례식은 식장 분위기가 조금 더 무거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럴 수 있겠네요.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문득 이 공기에 눌러 질식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텅 빈 집안에 혼자임이 느껴질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처남이었다. ‘박지민’이라는 세 글자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제 우리 처남과 매부 따위, 아무것도 아닐지도.
- 형님, 저 지민인데요. 중간에 제가 가방을 잘못 옮겼는지 부의금을 제가 갖고 있어서… 엄마가 집으로 내려가기 전에 형님 주고 오라시는데, 혹시 제가 지금 가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그의 목소리가 오늘은 듣기 싫지 않았다. 이유 모를 홀가분함이 나를 휘감았다. 참으로 나는 몹쓸 인간이었다.
“응, 와.”
*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거실등을 끈 채 tv만 켜져 있는 걸 보고 내가 잘 준비를 하는 줄 알았는지, ‘가방 여기 있어요.’ 하고 신발장에서 바로 돌아가려는 그를 내가 붙들었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몸 좀 녹이고 가. 밖에 춥잖아.”
“괜찮아요. 어차피 금방 다시 갈 거라서….”
“너 온다고 해서 코코아 타 놨어. 그것만 마시고 가.”
내 말에 그는 머뭇거렸다. 나는 한 번 더 그를 붙잡았다.
“그냥, 밤도 늦었는데 자고 가. 내가 장모님께 말씀드릴게.”
“…….”
“이 집에 나 혼자 있는 것도, 아무리 남자라도 좀 무섭고… 해서 그래.”
“그치만….”
“오늘 밤 하루만.”
그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러다 어렵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하마터면 그에게 커다란 웃음을 보일 뻔 했다.
*
그가 거실로 올라오자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우유에 스팀을 내고,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며 나는 조금 신난 수다쟁이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그는 작게 웃고 대답하고 대화에 맞춰주며 목을 감싸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제 옆에 곱게 개켜놓는다. 초코가루가 어디 있더라…. 나는 찬장에서 찾아낸 초코가루를 그가 마실 머그컵에 듬뿍 담았다. 그리고 그 위로 거품이 잘 일은 따뜻한 우유를 부었다.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머그컵을 받아든 그가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가끔씩 호록, 하고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뜨거웠는지 입에 잘 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워낙 뜨거운 걸 잘 못 마시는 편이기도 했다.
의미 없는 tv 화면을 애써 들여다보던 나는 문득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문득? 솔직한 말로는 계속해서 쳐다보고 싶은 걸 참다가 방심한 사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 버린 것에 가까웠다―. 그의 입술에 초코색 거품이 묻어 있었다. 하얗고 통통한 볼 옆, 빨갛고 도톰한 입술 위로 묻은 그 거품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려고 가져가던 나는,
그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가볍게 고정한 채 거품이 묻어있는 그의 윗입술에 입을 맞췄다. 굳어버린 그의 몸과 놀라 집어삼킨 숨소리가, 혀끝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초코맛처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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