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03. 본문

국슙 외 : 화무십일홍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03.

몽블랑11 2017. 3. 2. 23:59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03.

w.몽블랑




*



여느 때와 같이 아이와 함께 오후 시간을 보내는 지민이었다. 따뜻해진 봄 햇살을 맞으며 아이는 지민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그런 아이를 토닥이며 바라보던 지민 또한 몸이 나른하다 생각했다. 벌써 햇살이 이렇게 따뜻해질 때가 되었나 싶을 정도로 꽤 공기가 달아올랐다는 느낌이 들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보료로 자리를 옮기려던 지민은, 일어섬과 동시에 다리가 풀려 아이를 든 채 그 자리에 주르륵 주저앉았다.



“아, 흐읍…!”



놀란 태형이 마마, 하고 부르며 다가왔지만 지민은 다급하게 ‘다가오지 마시오!’ 하고 거부했다. 단호하면서도 당황스러워 하는 지민의 목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멈춘 태형에게, 지민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색색대는 숨을 애써 감추며 태형에게 명했다.



“어의에게… 주기가 왔다 말하고, 아이를 흐으… 아이를 데려가 주시오. 읏, 그리고, 전하께… 하아….”



제게서 달콤한 장미향이 났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리가 덜덜 떨려왔다. 제 치마를 꽉 움켜쥔 지민의 손이 하얗게 질렸다. 태형은 지민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입술을 꽉 물고는 지민이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아이를 태형이 제 품으로 데려와 안았다. 아이는 지민의 품에서 떨어진 걸 알았는지 태형의 품으로 옮겨가며 칭얼거렸다. 칭얼대다 곧 몸을 뒤틀며 커다랗게 울어버리는 것에, 지민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왕자의 울음이 신경 쓰였는지 ‘이 분은 괜찮습니다, 대군… 울지 마세요.’ 하고 아이를 달랬다. 그를 바라본 태형은 씁쓸한 얼굴로 온 몸을 다해 우는 아이를 안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태형은 아이를 유모에게 인도하고, 어의가 있는 곳으로 가 지민이 주기임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어의는 놀란 얼굴로 사람들에게 교태전에 금줄을 치라 말하며 접근 금지령을 내리고는, 태형과 함께 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중전이 주기에 들었다고?”

“예, 전하. 여기 호위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정국은 느릿한 말투로 어의에게 되물었고 어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태형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지민의 모습을 보고 온 터라 한시가 급했다. 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지민이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나, 어의와 왕이라면 지민을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째서 어의는 이런 중대한 사실을 이제야 알리는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음인의 주기라 이르지 않았는가.”

“그건….”



사실이었다. 음인의 주기는 일정했고, 그에 맞추어 나라의 계획에 따라 주기가 오지 않도록 하는 약을 중전에게 지어 올렸었다. 그랬기에 갑자기 제게 와 중전이 주기에 들었다 말하는 어의를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정국이었다. 어의는 이내 말을 이었다.



“허나 전하, 중전마마께서는 남자 음인이신 터라 그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사옵니다. 더구나 임신과 출산 후 처음으로 맞는 음인의 주기란 상당히 불규칙적이기도 해서 저희로서도….”

“지금이라도 약을 먹이면 나아지지 않겠소?”

“이미 주기에 드신 터라 약으로는 소용이 없습니다, 전하.”

“…하아….”



정국은 이마에 손을 댄 채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태형과 어의의 말은 지금 당장 가서 중전을 살펴주라는 것이었으나, 정국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는 말이 맞았다.



봄이 되어 나라 안의 일년지계가 시작되면서 한창 정무로 바쁜 시기에 터진 주기라니. 게다가 지민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지민을 가라앉힐 수 있는 단 한 명의 양인이라는 이유로 제 자신만 바라보는 어의와 태형이, 정국에게는 그리 탐탁지 않았다. 만성인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머리를 지압해보아도 그리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한참의 침묵 후에 정국이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주기를 양인과 함께 보내지 않는다 하여도,”

“…….”

“음인에게 해가 가지는 않잖소.”

“그러나 경우에 따라 많이 힘들 수도,”

“이전에 내게 감기를 앓는 정도라 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전하.”



영리한 왕이었다. 지민을 중전으로 맞았을 때 어의가 해주었던 음인과 양인에 대한 설명을 작은 예시까지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감기로 치자면 심한 감기일 것이나, 애초에 설명을 할 때 제가 그리 말했던 탓에 어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의의 대답에 놀라 고개를 든 건 태형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지민의 상태를 몰라서 이런 말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지민의 상태를 봤다면 두 사람 다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태형이 실례를 무릅쓰고 급하게 끼어들었다.



“그렇지만 전하, 지금 중전마마께서의 상태가,”

“그만.”



정국의 명이었다. 그를 거스르면 태형은 감히 정국에게 두 번이나 실례를 저지른 것이 된다. 붙잡고 있던 이마에서 손을 뗀 정국이 천천히 눈을 떠 태형을 바라보았다. 중전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는 호위가 보였다. 정국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어 태형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중전의 몸이 상하지 않는다면 굳이 찾아갈 생각은 없소. 다음 주기엔 그에 맞추어 약을 먹으면 될 테니 이번 한 번만 어떻게든 견디면 될 거요. 만약 지금 가서 또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것도 중전에겐 힘들 테고.”

“하오나 전하.”

“그대도 숙소에 가서 쉬시오. 어차피 며칠 간 교태전은 그 누구의 접근도 허하지 않을 테니.”

“전하…!”

“더 이상 이야기는 듣지 않겠소. 물러들 가시오.”



정국은 책상에 있던 두루마리를 집어 들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의와 태형이 오기 전부터 읽고 있던 두루마리였다. 서류에 눈을 고정한 정국의 모습에도 태형은 대전에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어의가 고집을 부리며 움직이려 하지 않는 태형을 억지로 끌고 나가는 것이 정국의 시야에 걸렸지만 정국은 그를 향해 고개를 들지 않았다.



결국 태형이 억지로 밀려 나가고서야 정국은 한숨과 함께 그가 나간 길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저 호위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



정국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태형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의 주군을 누구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저 호위는. 하는 생각에.



*



자신을 자욱하게 둘러싼 열에 들떠 정신을 잃었던 지민이 눈을 떴다. 그리고 금방 알 수 있었다. 정국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음인과 양인은 제각기 품고 있는 향이 있었고, 그것은 그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이들에겐 전혀 맡아지지도, 느낄 수도 없는 향이었다.



그러나 지금 제 곁엔, 정국이 가진 숲의 향이 조금도 맡아지지 않았다. 정국의 품에 안기면 숲에 들어가 있는 듯한 푸르고도 시원한 향이 났는데, 이곳 교태전엔 제가 가진 짙은 장미향만이 가득했다. 장미를 꽃만 따서 방안 가득 도톰히 깔아놓으면 이와 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 어지러운 꽃향기가 달뜬 공기 속에 진하게 표류하고 있었다.



“아흑… 아아….”



최대한 몸을 웅크려 봐도, 한껏 예민해진 몸이 보료에 쓸릴 때마다 제멋대로 쾌감을 자아냈다. 고통스럽기까지 한 쾌감은 주기마다 들뜬 열과 함께 찾아와 지민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를 달랠 수 있는 것은 정국뿐이건만, 그것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이건만, 정국은 결국 제게 조금도 발걸음하지 않은 것이다.



“…흐읍, 으응…! …흑….”



지민의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흘렀다. 몸이 견디기 힘들어 눈물이 나는 것인지,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열에 달뜬 몸과 달리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다. 몸을 싸고 도는 외로움과 비참함이 지민을 옥죄여온다.



지민은 짙은 제 장미향에 숨이 막혔다.



*



모두가 퇴청한 어느 밤이었다. 혼자 대전에 남아 여느 때처럼 업무를 마무리한 정국은 대전을 나와 자신의 침소로 향했다. 침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청사초롱을 든 환관을 퇴근시키고 혼자 들어가려던 때였다.



처음엔 흔한 밤공기인 줄 알았다. 그 습하고 촉촉하면서도 머리가 맑아지는 그 향기가, 공기에 떠도는 계절의 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침소에 다다를수록 그 향이 짙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침소로 들어가는 대문을 열려던 정국이, 담벼락을 따라 걷기 시작한 것도 그 이상함 때문이었다. 무언가, 그 은은한 향기의 근원지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



“……!”



그러다 뒤뜰 쪽에 위치한 담벼락 구석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정국이 천천히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짐승인가 싶었다가, 사람인 것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입고 있는 것이 심지어 관복인 것을 보고 정국은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당신 누구요!”



정국은 쓰러져 있는 그의 상체를 들어올렸다. 밭은 숨을 내쉬며 감겨 있던 눈을 간신히 떠낸 그의 정체는, 일전에 제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던 맹랑하고도 대쪽 같던 이조정랑, 김윤기였다.



“하아… 하아…. 전하….”



윤기가 정국의 소매를 꽉 잡았다. 하얀 얼굴이 달빛에 비쳐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전하… 전하…. 윤기는 하릴없이 숨이 섞인 목소리로 정국을 부르기만 했다.



이런 이가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걸까. 놀란 정국이 이곳이 어디인지도 잊어버린 채 윤기가 어디 다쳤는가 싶어 살펴보다가, 제 의식이 멍하게 흐릿해지는 것을 간신히 바로잡았다. 오늘 피곤했던 건가, 싶었던 정국은 이내 제 숨소리까지 흐트러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새벽녘의 공기 같은 향이 점점 짙어졌다. 그것이 정국을 흔들고 있었다. 윤기를 살피다 다른 곳이 아니라 뒤가 푹 젖어 있음을 알았다. 분명 핏자국은 아니었다. 결국 정국의 표정이 굳어졌다. 따뜻한 몸과 액으로 젖은 뒤, 그리고 터지는 달뜬 신음.



“자네 설마….”

“…하아, 하아….”

“음인이오…?”



곧 정신을 잃을 것 같이 멍해지던 윤기의 시선은 간신히 정국에게 고개만을 끄덕여 보이고는, 그대로 감겨버렸다. 정국은 그런 윤기를 품에 안고 황망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정국은 이 새벽공기 향에 이대로 취해버릴 것 같은, 삼켜질 것 같은 위험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

주기=히트사이클

아마 알파오메가 기본 설정을 알고 계셔야 그래도 글이 잘 이해가 되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뭔가 설정을 풀어내고는 있는데, 저는 알고 있는 게 있으니까 아마 읽으시는 분들한텐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ㅠㅅㅠ

오메가에겐 히트사이클이라는 주기가 옵니다. 이때 가임기가 되는 건데요 그때 얘들이 향을... 페로ㅁ... 엄.... 이런거 설명하기 갱장히 민망하네여... 네이버에 많이 많이 나오니까 거기 함 찾아보세여 하하핳 ^ㅁ^ (결국 설명하지 못했다)

글이 지금 제대로 써진 건지 어쩐 건지 깊은 밤이라 잘 모르게써요 ㅠㅠ 나중에 수정할 수도 있을 것 가타요ㅠㅠ

하뜌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어공주 이야기에 댓글 남겨주신 ㄹㄹ님과 대디에 댓글 남겨주신 쭝님 감사합니다♥ 지금 대댓 달러감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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