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5. 본문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5.
서로 출근해 밀린 서류를 작성하는 윤기의 뒤로 윤기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팀장이었다. 자신의 자리로 손짓하는 그에 윤기는 자리로 일어나 팀장에게로 향했다. 예, 하면서 팀장의 앞에 섰는데 그의 표정이 영 탐탁지 않아 보인다.
“윤기야.”
“예.”
“우리가 지금 박지민이 데리고 있은 지 얼마나 됐냐.”
“두 달 좀 넘는 것 같습니다.”
“별다른 소식 있냐.”
“없습니다, 아직은. 저쪽도 조용한 것 같고.”
“별다른 소식이 생길 건 같냐?”
팀장의 말에 윤기가 한숨을 내쉰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윤기의 대답에 팀장의 입에서도 깊은 한숨이 터졌다. 안 그래도 위에서 압박이 들어온 터였다. 안전가옥을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지민에게서 아무런 기미도 보이질 않는 게 문제였다. 경찰 측에서 지민은 보호의 대상이자 일종의 미끼였다. 지민을 어느 조직에서인가 노리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고, 그를 위해 경찰 측에서 맡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박지민이는 기소는 가능한 거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불기소될 것 같습니다. 본인 기억도 없을뿐더러 현재 체포된 애들 입에서도 박지민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없어서…. 이 조직에 박지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병원에서는 뭐래. 기억을 빨리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대냐.”
“담당의는 좀 더 자유롭게 해주라는 말 뿐이어서요. 다음 면담부터는 뭐 저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질 않나.”
“뭐? 너더러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예. 제가 있어서 박지민이 기억을 찾는 데 집중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나. 하면서 들어오지 말라더라고요. 일대일로 하는 게 담당의랑 환자 관계에도 좋을 것 같고, 관례상으로도 원래 면담에 형사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하니 제가 뭐, 할 말이 있어야죠.”
“이것들이 경찰을 호구로 아나.”
위에서도 지랄, 밖에서도 지랄, 지랄지랄, 지랄이 풍년이네. 삼시세끼 지랄만 처먹어도 배가 터지겠다. 에이 드러운 것들. 팀장의 욕을 들으며 윤기는 할 말이 없어 죄송합니다, 한다. 팀장은 화가 난 듯 ‘니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새꺄. 등 펴, 인마!’ 하고 말했지만 윤기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에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기에 저렇게 화를 내는 팀장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요즘 이상하게 변해버린 지민도 윤기를 답답하게 하는 데 한 몫 하고 있었다. 달라지지 않은 척하지만 이전보다 어딘가 어두워진 지민을 매일 보는 윤기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윤기가 없을 땐 식사를 거르고, 알게 모르게 윤기의 눈치를 보고, 대화를 하려고 하기 보다는 혼자 있으려 하는 지민의 행동들에 윤기는 조금씩 답답해져 갔다. 석진에게 지민에게서 무언가를 들었는지를 물어도 석진 또한 별다른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지민은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오늘도 퇴근을 하자 인사를 하고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가 버리려는 지민을 윤기가 박지민, 하고 부른다.
“네?”
“잠깐 내려와 봐. 나랑 얘기 좀 하게.”
“저 책 읽던 게 있어서….”
“아 헛소리 하지 말고 그냥 와.”
화가 난 듯한 윤기의 목소리에 지민이 천천히 1층으로 향한다. 벌을 받을 아이처럼 눈치를 보는 지민에 윤기는 거실에 앉아 그를 제 앞으로 불렀다. 여기 앉아봐, 하는 윤기의 말에 지민이 그의 앞에 앉았다.
“너 요새 기억난 거 있지.”
윤기의 날카로운 말투와 시선에 지민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한 번에 포기할 윤기가 아니었다.
“아니길 뭐가 아니야. 너 나한테 거짓 자백하면 큰일 나는 거야. 알고 있어? 기억이 나면 얘기를 재깍재깍해줘야 사건이 해결될 거 아니야.”
“…….”
“넌 지금 범죄자고, 여긴 안전가옥이고, 난 형사야. 우리가 괜히 얼굴 맞대고 여기 앉아있는 게 아니라고. 너도 여기 갑갑하잖아. 우리 빨리 하고 나가자, 좀.”
윤기의 말에 지민이 고개를 숙인다. 윤기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지민의 머리통을 윤기는 마뜩찮은 눈길로 바라봤고, 지민은 그런 윤기의 시선이 아팠다. 자신을 범죄자라 규정하는 윤기의 말도 상처가 되어 박힌다. 아직은 제대로 생각난 것도 없는데. 그러나 제 기억을 숨기고 있다는 윤기의 말은 틀리지 않았기에 지민은 제 입술을 꾹 물었다. 윤기 말엔 틀린 게 없었다. 자신은 범죄자였고, 자백을 숨기고 있었고, 그는 형사였으니까.
“뭐가 기억났는데. 말해봐.”
“…방이요.”
“방?”
“어두운 방이에요. 제 손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조명이 어두워요. 거기에 갇혀 있어요.”
“갇혀 있다고?”
“네. 제 의지로 들어간 건 아니에요. 문을 열어봐도 열리지 않거든요. 잘 모르겠지만, 전 제가 문을 열어서 거기서 나가지 못할 거란 걸 알아요. 나가려는 생각도 별로 없어요.”
사실 어떤 것에도 의욕이 없는 것에 가까웠지만, 지민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전혀 몰라요. 창문이 없어서 밖이 보이질 않고, 화장실에 창이 있지만 너무 높아서 하늘만 보여요.”
“방 안엔 뭐가 있는데?”
“침대랑 협탁이요.”
“그리고.”
“그게 다예요.”
그게 다라는 지민의 말에 윤기가 인상을 찌푸린다.
“침대가 다라고?”
“네.”
“…무슨 방이 그래?”
“저도 모르겠어요. 제 기억엔 그랬어요.”
지민의 얘기를 들은 윤기가 제 입술을 혀로 축인다. 미간에 주름이 간 채 무언가 생각을 해보지만 전혀 윤기의 머리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방에서 지민은 혼자, 뭘 했을까.
“그런데 그게 뭐가 어떻다고 너 이렇게 며칠 동안 우울해 하는 거야.”
윤기는 그간 지민의 행동이 이상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 방이… 외로워서요.”
“뭐?”
“외롭고, 무서웠어요. 꿈을 꾼 것처럼 기억이 돌아오면 그 공간이랑 느낌도 기억이 났어요. 너무 외롭고 무서워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아야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안 그러면… 외로워서 내가 나를 죽일 것 같았어요. 그치만 혼자 있으면 자꾸만 생각나고, 거기서는 죽을 수도 없어서, 그래서 슬퍼요.”
“…….”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억이 나는 게 무서워요. 기억만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요.”
“…….”
“형사님, 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때의 저는… 지금의 박지민이랑은 많이 달랐을까요? 저는, …저는, 지금이 좋은데….”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던 지민의 옷으로 눈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진다. 윤기는 말을 잃었다. 지민의 진술은, 진술이라기엔 너무나 감정적이었다. 형사로서는 그렇게 얻을 게 없던 시간임에도, 윤기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울음을 삼키며 눈물만 떨어뜨리는, 파르르 떨리는 지민의 어깨를 가만히 도닥여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
석진은 한 병실의 문 앞에 서있었다. 의사가운을 입고 있지만, 항상 이 시간은 석진을 세상에서 제일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했다. 제 동생의 병 하나 못 고치는 사람이 저인 것을, 하얀 의사가운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난치병이라며,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겠다고만 하는 전문의들도 다 돌팔이였다. 동생을 힘들게 하는 이 병을 그 수많은 똑똑한 사람 중 아무도 고칠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는 손이 병실 문을 꽉 잡고 드르륵, 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있던 남준이 형, 하며 석진을 향해 고개를 든다. 길게 접히는 눈웃음에 석진이 함께 입꼬리를 올린다.
“뭐했어.”
“이거.”
남준이 제가 맞추던 나노블록을 들어 보인다. 뭔지 몰라도 벌써 형태가 보이는 것이 많이도 맞췄다.
“네가 사왔어?”
“미쳤어? 나갔다 괜히 쓰러지면 형이랑 정호석한테 무슨 욕을 어떻게 다 들어먹으라고. 정호석이 사다줬지.”
“몇 피스짜린데. 호석인 언제 왔다 갔어?”
“800피스 넘는 것 같아. 와 이거 오늘 다 맞출 수 있나? 정호석이야 뭐 맨날 오는 시간에 오지. 지 수업 끝나고. 근데 오후에 수업 또 있다고 금방 갔어. 형 나 이거 봐.”
블록을 꾹꾹 누르느라 제 빨개진 손끝을 보여주는 남준에 석진이 ‘아프지 않아?’ 하고 묻는다. 그러자 남준은 제 어깨를 으쓱, 하며 ‘뭐 이깟 걸로.’ 하고는 다시 블록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거 다 맞추면 원피스 브룩 된다. 형 브룩 알아?”
“아니.”
“형 원피스는 알아?”
“하하, 모르지.”
“이야. 형은 도대체 뭔 재미로 지금까지 살았냐, 원피스도 모르고. 하긴 맨날 공부만 했으니 알 리가 있나. 형은 도대체 뭐 할라고 그렇게 공부만 열심히 했냐.”
와 어떻게 사람이 원피스를 몰라. 고무고무. (절레) 악마의 열매. (절레) 루피. 나미. (절레절레) 와. 대단하다, 김석진. 박수를 짝짝 쳐가며 자신을 놀리는 남준에 석진이 픽 웃어 버린다.
남준의 말이 사실이었다. 자신은 학창시절 내내 공부밖에 몰랐다. 왜 그리도 공부를 열심히 했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남준 뿐이었다.
남준은 어렸을 때부터 이유 없이 픽픽 쓰러지곤 했다. 그때마다 생명이 위험하단 얘기를 들으며 응급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가끔씩 혈당이 빠른 속도로 떨어져 위험한 수준으로 치고 내려갔다. 그럴 때면 아무런 조짐도 없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남준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 내리고, 하얗게 질려 덜덜 떨리는 그 몸을 붙들고 석진은 무력하게 구급차를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땐 자신이 의사가 되면 무엇이라도 가능할 줄 알았다. 이 병을 고쳐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대 의학에도 불가능은 있었고 석진 또한 그곳에서 예외일 순 없었다. 처음엔 그게 분하고 분해서 외국 서적도 뒤져보았지만, 외국의 의술이라고 해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남준이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당장 입원하라는 석진의 말에 남준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고등학교를 마치겠다고 우겼지만, 아침 조회 시간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 며칠을 깨어나지 못했다. 사선을 넘나들다 간신히 의식을 찾았을 때, 제 수염도 깎지 못하고 간이침대에 널브러져 잠든 석진을 본 이후로는 그 또한 석진의 의견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남준은 고등학교 3학년, 학교를 자퇴하고 석진의 병원에 입원을 했고, 그곳에서 공부하며 검정고시에 합격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있던 날. 펑펑 함박눈이 내리던 그날, 남준을 딱히 여긴 그의 담임선생님이 명예 졸업장을 만들어 호석을 통해 남준에게 전달해 주었고, 호석이 건네 준 그 졸업장을 소중하게 들고 남준은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그 위에 뚝, 떨어뜨리고는 제 환자복 소매로 슥 닦아냈다. 그런 남준의 눈물을 뒤로 돌아 모른 척 하던 호석은 남준의 눈물이 멎었을 즈음, 제가 받은 꽃다발을 남준에게 안겨주고는 ‘야, 졸업식이니까 사진이나 한 장 찍어. 다들 사진만 찍고 집에 가더라. 졸업식 별 거 있냐.’ 했다. 남준의 독사진을 찍었다가, 회진을 막 마친 석진을 데려다 남준과 함께 찍어주고, 이번엔 석진이 호석과 남준을 찍어주고. 그날 찍은 사진들은 남준의 침대 옆 콘솔 위 액자 속에 그때 그 시간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 남준을 쥐고 석진을 협박하고 들어온 게 바로 정국의 조직이었다. 지민을 윤기에게 보냈던 그날, 석진은 발신자 미상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어느 그룹 대표이사 전정국이라고 밝힌 그는 지민의 이름을 꺼내며 ‘선생님 환자라고 하더라고요.’ 하며 말을 시작했다.
- 박지민 씨 지금 기억 잃은 거 맞죠?
‘제가 그쪽분이 누구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료상담기록은 법적으로 요구하시지 않는 한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 아, 선생님 동생 이름이… 김남준, 그래. 김남준 맞죠? 그 병원에 입원해 있고.
석진의 말을 끊고 들어온 남준의 이름에 석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가벼운 말투로 제 동생의 이름을 입에 올린 남자는 석진의 침묵이 마음에 든 듯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남들은 그냥 가둬만 놓는다고 죽진 않거든요? 그런데 가둬두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 동생분이. 무슨 난치병이라면서요? 이렇게 안쓰러운 경우는 저도 처음 봐서 잘 모르지만요.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 그냥 저희한테 조금만 협조해 달라는 말씀이죠. 저희도 괜히 사람 생명 갖고 장난치긴 싫고요. 부모님도 없이 키운 귀한 동생이잖아요. 의사 선생님이니까 어려운 건 부탁 안 드릴게요. 괜찮으시죠?
‘…….’
- 어… 대답이 없으시네.
‘알겠습니다.’
- 아, 그리고 괜히 경찰에 연락하시고 그러시지 마세요. 사실 선생님이 박지민 담당의인 것도 알고, 담당 형사가 민윤기 씨인 것도 알고, 상담 내용도 이미 다 알고 전화 드리는 건데, 선생님 동생분을 여기로 데려오는 거야 그런 것들 알아내는 것보단 훨씬 쉬운 일이잖아요.
‘…….’
- 납치범들이야 유치장 가면 그만이지만, 납치된 피해자는 영영 못 찾는 일도 생긴다니까요. 이 바닥이 그런 바닥이죠. 위험하니까 몸 사리시는 게 좋아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면서 제 할말을 뱉는 정국의 목소리에 소름이 끼친 석진은, 그러나 제 어금니만 꽉 깨물 뿐이었다. 정국의 전화가 끊기고 나서 떠오른 지민의 말간 얼굴에, 석진은 제 머리카락을 쥐어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남준이 걸려 있는 이상, 저는 지민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그 절망과 미안함에.
*
+)
원피스 짱 춒파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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