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같은 나도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6. 본문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6.
- 김태형 씨, 지금 어딥니까.
정국의 갑작스런 전화였다. 화나 보이는 목소리. 태형이 급하게 옷을 챙겨 집을 나선다. 정국의 전화는 이사실로 오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끊겼다. 왜 정국이 화가 났을까. 급히 차를 몰아 도착한 회사의 문을 열고 VIP용의 엘리베이터를 잡아 탄 태형이 제 손톱 끝을 깨문다.
이사실에 도착한 태형이 옷을 정리한다. 숨을 가다듬어 보지만 그리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 벌어질 일이 조금은 예상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똑똑,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두드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한숨을 내쉰 태형이 ‘이사님, 저 태형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문을 연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엉망이 된 이사실이었다. 사무실 바닥 가득한 서류들이며 책장 아래로 곤두박질친 책들. 그곳에서 정리되어 있는 건 단 하나, 소파에 미동도 없이 앉은 정국뿐이었다. 사무실 불조차 켜지 않은 탓에 바깥의 조명만 들어오는 거대한 사무실과 정국의 침묵. 움직이는 빛들. 태형이 조명 스위치에 손을 올리자 정국의 ‘켜지 마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행동을 멈춘 태형에게 정국이 일어나더니 다가온다. 벽 쪽으로 붙은 태형을 더 벽으로 밀어붙이듯 몸을 밀착하는 정국에 태형이 제 숨을 멈춘다.
“김태형 씨.”
“…예.”
“일 똑바로 안 하죠.”
“…….”
“박지민 기억 일부 돌아왔다는 건 알고 있습니까.”
“아까 들었습니다.”
퍽, 소리와 함께 태형이 헉 소리를 내며 양 팔로 제 배를 감싸 안는다. 그런 태형의 옆구리를 강하게 차 바닥으로 쓰러뜨린 정국이 태형을 따라 자세를 낮춘다. 태형은 제 배와 허리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기침을 토한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학학대며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자 그런 태형의 눈을 똑바로 맞추는 정국의 뒤로 번쩍이는 조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태형의 뒷머리칼을 한 손 가득 쥐고 뒤로 세게 잡아당기자 태형의 입에서 신음이 샌다. 정국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나 김태형 씨 없으면 안 된다고 했죠. 그게 무슨 말인지 알잖아. 내가 당신 믿는 만큼 당신도 보여주는 게 있어야죠.”
“죄송, 하윽…, 죄송합니다.”
“이 일, 언제까지 처리할 겁니까. 나 많이 기다린 것 같은데.”
“이번 주 내로, 데려오겠습니다.”
“그 말 지킬 자신 있어요?”
“예.”
그 말이 마음에 든 듯, 정국은 싱긋 웃으며 태형의 머리칼을 놓고 손으로 쓰다듬는다. 내상을 입었는지 입에서 피를 흘리는 태형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정국이 태형의 뒷목을 잡고 입을 맞춘다. 입 안 가득 퍼지는 피비린내는 비릿했지만 그것만큼 정국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그 때문인지 짧게 입술을 맞추고 떼었던 정국이 뭔가 모자란 듯 다시 태형의 입술을 찾아든다. 조심스레 뜨였던 태형의 속눈썹도 파르르 떨리며 다시 감긴다. 숨이 막히도록 길어지는 입맞춤에도 태형은 거부의 몸짓 하나 없었다. 마치 잘 길들여진 개처럼. 태형은 항상 그랬다. 언제든 거부하는 법이 없었다. 정국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오랜 키스로 젖어 질척이는 태형의 입술을 제 혀로 쓸어 정리해준 정국이 손으로 태형의 볼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신의 폭력부터 키스까지 받아낸 태형을 내려다보던 그는 ‘사무실 정리 좀 부탁할게요.’ 한 마디를 남기고는 이사실을 떠난다.
어두운 사무실에 혼자 남은 태형이 천천히 머리를 뒷벽에 기대고 접혀있던 한 쪽 다리도 바닥으로 풀어낸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날엔 태형도 견디기가 힘들 지경까지 몰아붙이는 그였으니까.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 답답함에 태형은 울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울 수 있을까, 하고. 그러나 메마른 지 오래인 제 눈에 눈물 같은 건 사치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신 눈을 감았다. 제 눈앞에 새카만 암막이 쳐지고 나면 태형은 그제야 정국이 아닌 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괜찮지 않은 제 자신을. 아픈 제 자신을. 초라해지는 제 자신을. 무릎을 안고 제 자신을 껴안아 봐도 따뜻해지지 않을 정도로 이미 제 몸에 스민 듯한 외로움을.
다음 날 태형은 멍하니 아이들의 의자에 앉아 어린이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가끔은 어린이집이란 곳이 저와는 너무 동떨어진 곳처럼 멀게 느껴졌다. 세상모르고 뛰고 소리 지르고 웃고 우는 아이들의 세상이, 너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세상이 저를 방관자로 제외해버려서, 멀찍이에서 굴러가는 세상을 응시하는 느낌이었다. 그럴 땐 눈을 감고 그 모든 것들에서 멀어지려 애를 썼다. 제 심란한 마음을 혼자서 가라앉힐 수 있도록. 그렇게 아이들의 소란함과 그 모든 풍경에서 태형의 정신이 멀어질 때쯤, 누군가 조심스럽게 태형의 손을 잡았다. 손에 느껴지는 보들보들함에 태형이 천천히 눈을 뜬다. 다인이었다.
“태태 선생님, 졸려요?”
갸우뚱, 하고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어린 얼굴에 태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졸려요.”
“그럼 아파요?”
“안 아파요.”
“그런데 왜 선생님 슬픈 것 같아요?”
다인의 말에 태형이 그래 보여요?, 하고 묻는다. 다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조그마한 두 손으로 태형의 한 손을 꼭 감싸 쥔다. 태형의 손에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진다. 태형은 그 느낌이 너무 생경해서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빠가 그러는데 내가 이렇게 해주면 아픈 것도 다 낫는대요.”
“…….”
“선생님 슬픈 것도 나아라! 빨리 날아가라!”
‘샌샌님 스픈 거또 나아라! 빠이 날아가아!’ ㅅ발음은 새는데다 ㄹ발음까지 서툰 아이의 말에 태형은 푸스스 웃어버리고 말았다. 민윤기. 그 형사는 가끔은 이렇게 이 아이에게 치유 받으며 그 험난한 직업을 이어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것조차 없으면 그 또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고마워요, 하며 아이의 조그마한 머리통을 조심스레 안아 준 태형은 기운을 내서 제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어떤 움직일 수 있는 기력이 나는 것도 같았다.
*
윤기는 제 알람 소리에 부스스하게 눈을 뜬다. 핸드폰 알람을 끄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녘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건지 점점 깨어나는 시간에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지민도 제 알람 소리에 깬 건지 2층에서 ‘으응….’ 하고 잠에 취한 소리가 들려온다.
거실에 불을 켜고 씻고 나와서 집을 둘러보는데 지민이 없다. 이쯤이면 원래 퉁퉁 부은 얼굴로 거실에서 티비를 보거나 냉장고를 열어 뭔가를 입에 넣고 있어야 하는데 거실이 조용했다.
“…박지민?”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도 조용하다. 설마, 하는 생각에 심장이 쿵 떨어진다. 혹시 이런 시간에, 제가 무방비했던 이런 시간에 도망을 친 건 아닐까? 그럼 먼저 CCTV부터 확인해야 하나? 어디로 갔지? 언제 간 거지? 지금 뛰어 나가면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근처 지구대에 먼저 연락을 할까? 윤기는 허겁지겁 제 옷을 주워 입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1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현관으로 달려 나갈 때였다.
“형사님….”
잔뜩 긁히는 지민의 목소리. 윤기는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가만히 멈추고 제 소리를 죽였다. 그러자 다시 2층에서 ‘형사님…?’ 하는 지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아. 지민이 도망친 게 아니라는 안도감에 천장을 보고 한숨을 뱉은 윤기가 ‘너 왜 아직도 2층에 있어, 인마.’ 하고 평소 같으면 올라가지도 않았을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2층의 공기가 이상했다.
1층보다 공기가 따끈따끈한 듯한 느낌에 윤기가 2층이 천장이 낮아서 그런가? 하고 지민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지민이 제 목까지 이불을 덮고 있었다. 이불에서 전혀 나올 기미가 없어 보이는 지민에 윤기는 ‘너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저 아픈 것 같아요….”
말하는 와중에도 목이 따끔거리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지민의 말에 윤기가 지민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커다랗고 서늘한 손이 지민의 이마에 얹어지자 지민은 오르는 열에 시려오는 눈을 감는다. 윤기의 손으로 전해지는 지민의 열이 꽤 높았다. 딱 보기에도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정상은 아니었다. 잠깐만, 하고 1층으로 내려온 윤기가 티비 밑의 탁자 서랍에서 구급상자를 뒤적이다 찾은 체온계를 갖고 올라가 지민의 귀에 댄다. 삑, 소리와 함께 기계가 보여주는 체온은 38.4도. 윤기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열이 심한데….”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하다 어제 지민이 다인을 데리고 들어올 때 옷을 얇게 입은 것 같다며 춥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어린이집 차가 생각보다 늦게 와서 밖에서 오래 기다렸다며 저녁 때 윤기에게 칭얼칭얼 하더니, 제 예상보다 훨씬 추웠던 모양이다.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곤란한 얼굴을 하는 윤기에, 지민은 ‘저 괜찮아요. 이따 퇴근하실 때 약만 사다주시면 안 돼요…?’ 하고 묻는다. 그 와중에 저를 확인하고는 괜찮다고 말하는 지민이 불쌍해서 윤기는 지민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안쓰럽다는 듯 쓸어주었다. 그 손길에 지민은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제 눈을 꾹 감고 입술을 다문다. 지민의 머리를 쓸어주던 윤기가 ‘하….’ 하고 한숨을 쉬더니 핸드폰을 꺼내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팀장님, 저 민윤깁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박지민이 아픈 것 같아서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어제 옷을 얇게 입고 나갔다 그러더니 감기인 것 같아서…. 예, 예. …예, 오늘 중으로 처리해 놓겠습니다. 예,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은 윤기가 이번엔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석진 선생님 되시죠. 네, 저 박지민 담당형사 민윤깁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박지민이 감기가 걸려서 감기약을 먹여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지금 먹는 다른 약들이랑 부딪치는 거 있나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아. …예. 그럼 괜찮은 거죠. 네. 네 알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연달아 통화를 두 번 한 윤기는 또 전화할 곳이 없나 눈동자를 굴렸다. 팀장님, 닥터, 그리고… 다인이네 어린이집.
“예, 안녕하세요, 저 다인이 아빤데요.”
어린이집까지 전화를 끝마치자 윤기가 다 끝났는지 핸드폰을 제 재킷 주머니에 넣는다. 손등으로 지민의 볼에 대고 한 번 더 체온을 재보던 윤기는 ‘지금 나가서 약이랑 죽 좀 사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하고 말했다. 평소와 달리 걱정스러운 윤기의 말투. 지민은 자꾸 그런 것들에 눈물이 나려고 해 감기에 들렸다고 어리광이라도 부리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지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약과 죽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윤기가 죽을 덥히고 밥그릇에 덜어 약과 물을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지민이 이상하다. 지금쯤이면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이불을 얼굴 끝까지 끌어올린 지민이 이불 밑에서 꿈지럭거리는 게 보였다.
“뭐하냐.”
이상하다 느낀 윤기가 이불을 들춰보려는데 지민이 손으로 이불을 꾹 잡고 놔주지 않으려 한다. 윤기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진다. 아픈 주제에 왜 이런 데다 기운을 쓰나 싶어 윤기가 살짝 힘을 줘 잡아당기자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던 지민이 이불을 놓친다.
“…….”
“야, 너 뭐… 울어?”
“…흐으….”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서인지 울어서인지 아까보다 더 열이 오른 얼굴이 보인다. 흠뻑 젖은 속눈썹에도 아직도 눈에선 눈물이 퐁퐁 흐르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아프구나, 생각이 들자 윤기는 괜히 제 속이 쓰렸다. 이렇게나 아픈데도 아까 저더러 출근하라고 했던 게 생각나 더 안쓰러웠다. 아프면 서러운 법이라는데 기억도 잃고 이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지민을, 자신은 아까 의심한 나머지 현관 밖으로 뛰어 나가려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아픈데 곁에 있는 사람이 그런 자신뿐이라니. 괜히 미안해진 윤기가 제 손으로 지민의 눈물이 맺힌 눈가를 닦아주었다.
“울지 마라…. 울면 더 열나고 더 아파.”
“…흐… 엄마아….”
“…안쓰럽게도 운다.”
열에 들뜬 두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이 제가 이렇게 울었다는 걸 기억이나 할런지 모르겠다. 계속 이렇게 두다간 열만 오르겠다 싶어 약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윤기는 지민의 등에 손을 넣어 그를 약간 일으켰다.
“그만 울고, 약 먹자. 약 먹고 한숨 푹 자면 열도 내릴 거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지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준 윤기가 물과 약을 내밀었다. 물을 한 모금만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려 해 윤기가 ‘거기 들어있는 물은 다 마셔야 된다.’ 하고 말했다. 안 그래도 열이 나 입이 바싹 마른 지민이 다시 끄덕이며 물을 다 마시고나서야 윤기는 다시 지민을 눕혔다.
지민이 눕자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려 덮어준 윤기가 ‘좀 자라.’ 하자 지민이 눈을 감는다. 눈은 감았지만 울음의 여파로 숨을 불규칙적으로 토하는 것에 윤기는 지민의 가슴에 손을 얹고 천천히 토닥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안심하고 편안히 잠에 들라는 듯한 손길. 처음에 불규칙하던 숨소리는 얼마 후 규칙적인 숨소리로 바뀌었다. 지민의 자는 얼굴을 확인한 윤기는 그제야 몸을 일으킨다. 약 옆에 놓인 죽이 보였지만 그건 아무래도 못 먹일 것 같아 다시 들고 내려온다. 윤기는 어린이집에 전화해 다인을 데리고 오기 전 어렵더라도 지민에게 전화를 한 번 달라고 해야겠다 생각했다.
*
지민이 깨어난 건 저녁 무렵이었다. 한결 가뿐해진 몸을 느끼며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밖은 어둑어둑했고 1층에선 다인과 윤기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읍. 민다인, 삼촌 아프다고 올라가지 말라고 했지.”
“짐니 삼촌 많이 아파?”
“응. 지금 자는 중이니까 조용히 해줘야 돼. 이따 저녁 먹을 거냐고 한 번 물어보긴 해야 되는데 열이 내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볼래!”
“그럼 아빠랑 같이 가. 조용조용 올라가야 된다.”
“응!”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며 올라오는 부녀에 지민은 웃음이 터져 웃다가 입술이 찢어져 피가 배어나온다. 혀를 내밀어 제 터진 입술에 샌 피를 핥아내는데 다인의 눈과 시선이 마주친다.
“아빠! 삼촌 깼는데?”
“어? 삼촌 깼어?”
다인의 뒤로 윤기의 얼굴도 보인다. 다인을 쫓아 올라온 윤기는 지민의 이마에 다시 손을 대본다. 확실히 열이 많이 내린 얼굴이었다. 저 혼자 자면서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축축하게 젖은 이마와 머리칼에 윤기가 혀를 쯧쯧 찬다.
“몸은 좀 어떠냐.”
“이제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 아까도 괜찮다고 해놓고 끙끙 앓았는데.”
“이제 정말로 괜찮아요.”
확실히 아까보단 나은 듯한 지민의 목소리에 안심한 윤기가 ‘그럼 저녁 먹을 수 있겠어?’ 하고 묻는다. 끄덕이는 지민에 윤기가 ‘그럼 저녁 준비 시작한다. 쉬다가 다 되면 내려와.’ 하니 다인이 ‘나도 아빠 도와줄래!’ 하며 먼저 1층으로 내려간다. 윤기도 그런 다인과 내려가려는데 지민이 윤기의 옷을 붙든다.
“왜.”
“형사님, 저….”
“어, 왜.”
“자는 동안에 기억난 게 있어요. 그 방에 누가 왔는데 얼굴은 기억 안 났지만 향기… 향기가.”
“그만.”
지민의 말을 멈춘 윤기에 지민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다.
“오늘 아프니까, 내일 하자, 내일. 잊어버릴 기억 아니잖아. 굳이 아픈 사람 데리고 나도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오늘은 밥이나 먹고 약 먹고 푹 쉬어라. 어?”
“…….”
“부르면 내려오고.”
“…….”
“알았냐.”
“…ㄱ…ㅎ…”
지민을 등 뒤로 하고 계단에 발을 내딛는데 뒤에서 지민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뭐? 하고 고개를 돌리니 지민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뭐라고? 하며 한 번 더 물으니 지민이 고개를 든다.
“감사합니다….”
울먹이는 목소리와 눈망울 가득 차오른 눈물. 눈을 접고 웃는 지민의 얼굴에 윤기는 괜히 제 코도 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맙긴 뭘…. 이따 내려와.”
지민의 대답이 들리기도 전 계단으로 내려가 버린 윤기는, 민망한지 내려오며 ‘민다인!’ 하고 제 딸을 부른다. ‘왜 이렇게 늦게 내려와.’ 하며 투정을 부리는 다인과 ‘뭐 얼마나 늦었다고.’ 하며 구시렁대는 윤기의 대화. 지민은 조금 변한 듯한 윤기의 모습에 아까부터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는 게 느껴진다. 윤기를 향한 마음의 색이 어떤 색인지는 몰라도 그 색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맑게 옅기만 하여 있던 줄도 몰랐던 그 색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진 건 아닐까. 지민은 그게 걱정이었다.
*
+)
폭풍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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