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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 같은 나도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35. w. 몽블랑 * 한밤중이었다. 밤의 한중간을 지나는 고요한 시간. 암흑뿐인 공간과 반복되는 풀벌레 소리에 잠과 피로로 의식이 아득해지려하던 윤기는 발소리에 눈을 떴다.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 발소리에 윤기는 어떤 예감이 스쳤다. 빠르지 않은, 그러나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 제가 갇혀 있는 이 깊은 구석까지 찾아올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 정국, 그밖에. 정국은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어른거리는 작은 촛불 하나에 그림자가 어지럽게 일렁였다. 그의 표정을 알기가 어려웠다. 정국은 자신을 따라온 내관에게 불을 제게 달라 손짓했다. 내관은 그에게 불을 넘기고는 정국의 턱짓에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내관의 발소리에 윤기는 벽에..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26.w.몽블랑 * 평소 같은 밤길이었다. 풀마다 이슬이 맺힌 촉촉한 새벽의 길은 스산하리만치 고요했지만 윤기는 그 고요함이 제 피부 같이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제 향의 탓일 지도 몰랐다. 정국과 몸을 섞고 나면 제게도 느껴질 만큼 피어오르는 제 새벽향기가 이제와 낯설다면 이상할 것이었다. 정국이 잠이 든 사이 곁을 빠져나와 궁을 나올 때쯤, 옅어져 버린 숲의 향기에 어딘가 한 곳이 텅 빈 듯 외로움을 느낄 때면 언제나 같은 하얀 달빛이 말 없는 친구처럼 은은히 제 길을 비춰주곤 하는 것이었다. 저 달빛만큼은 제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아 윤기는 묵묵히 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집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느낌에 무언가 이상했다. 윤기는 평소 같은 고요함이 깨진 듯한 ..
[국슙/슙국] 호텔 캘리포니아 (Hotel California)w.몽블랑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어질어질한 밤의 골목은 휘황찬란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옷차림. 나는 그곳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 같았다. 누군가의 어깨에 치였고 욕이 들렸다. 물속에 빠진 것처럼 귀를 울려대는 욕이. 돌아보며 피식 웃자 나를 더럽다는 듯 쳐다봤다. 내가 가운데손가락을 올리자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달려들려 한다. 그러자 옆 사람이 그 사람을 붙들며 말렸다. ‘약에 취한 더러운 년이야. 상대하지 마.’ 비틀대며 밤거리를 헤매다 나는 항상 어슬렁거리던 거리에 멈춰 섰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벽에 등을 기댄다. 나를 향해 눈길을 주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던지면 갖가지 반응이 돌아왔다. 깜짝 놀라 눈길을 피하는 사람도 있는..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22.w.몽블랑 * 오늘도 아무런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한 채 하루가 다시 또 저물어 가고 있었다. 석진에겐 이런 매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분명 오늘은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겠다 다짐했었는데, 저도 모르게 걸었던 기대로 인해 찾아온 실망감에 석진은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이따금 불안감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석진은 가끔 막을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래서 남준의 본가에까지 사람을 보내보는 석진이었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전장으로부터 무언가 통보가 온다면, 제게로는 아무도 소식을 알려주지 않을 테니까. 그것이 좋은 소식이든, 혹은 나쁜 소식이든… 제가 알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찾아가야 했다. 다행인..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21.w.몽블랑 * 전략 회의를 끝내고 제 막사로 돌아가려 천막을 걷어내고 밖으로 나오는데, 무심코 던진 남준의 시선의 끝에 호석이 걸렸다. 숲의 밤그림자가 가려준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갈지자로 찍고 있었다. 그 움직임을 가만히 보던 남준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설마… 취했어?!” 이곳에서 술은 금기였다. 언제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는 곳에서 저렇게 술에 취해 걸어 다닌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군법에도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누가 보면 경을 칠 일이었다. 누군가 호석을 발견하기 전 그를 그의 막사에 데려다 놓아야 했다. 남준은 주위를 휘휘 둘러보곤 빠르게 호석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독한 술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눈이 탁 풀린 것..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18.w.몽블랑 * 궁이 고요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고요함 같았다. 전시의 궁은 모두 태평하게 아무 일 없이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많은 병력이 궁을 비운 지금, 사실은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치 예상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왕이 습격을 당해 쓰러졌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왕이 습격당했던 그 곳에 홍문관 부제학이 함께 있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 햇빛 한 점 들지 않았다.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아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 깔아둔 짚더미도 바꿀 때가 지난 것인지 군데군데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눈으로도..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16.w.몽블랑 * 우윽, 컥…! 하고 소복차림으로 정국의 침상을 향해 걸어가던 윤기가 비틀거리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뒤에서 윤기를 따라 걷던 정국이 예사로운 소리가 아님에 빠르게 윤기에게 다가갔다. 피를 토했는지 입을 막은 윤기의 손가락 사이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검붉은 죽은피에 정국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이게… 무슨….” 그러나 정국이 놀랄 틈도 주지 않은 채, 제 손에 핏덩이를 눈으로 확인한 윤기가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선 그 자리에서 쓰러져 내렸다. 힘없이 다리가 푹 꺾이는 것을 정국이 단단히 허리를 잡아 받아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정국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을 어찌 처리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의를 부를 시간도 아니었고..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14.w.몽블랑 * 지민은 읽고 있던 책을 스르륵 내려놓았다. 방금 제가 읽은 게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가 싶었다. 지민은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마른침을 삼키며 애써 누르곤, 다시 집중하여 제가 읽던 전 구절부터 읽기 시작했다. ‘…각인을 맺은 상대가 병에 걸리거나 상처를 입어 생사의 문제가 생기면, 나머지 상대방도 그에 준하는 일을 당하게 된다. 각인이라는 것은 두 사람의 운명이 함께 묶이는 일이라서 서로의 생사에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하여 한 쪽이 병에 걸리면 다른 한 쪽도 시름시름 앓게 되거나, 한 쪽이 목숨을 잃을 경우 다른 한 쪽 또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대부분 함께 목숨을 잃지만, 간혹 한 쪽만이 살아남는 경우도 있으며 이 경우 서로에 대한 각..
JK : 형은 누구예요? SG : 알아서 뭐하게. 관심 꺼. JK : 알고 싶어서 그래요. 대답 해주면 안 돼요? (졸졸) SG : (딥빡) 세상 누구한테나 가시 세우고 다니는 고슴도치 윤기랑 해맑은 토끼 정꾸.w.몽블랑 +) 그리고 아주 조금 써 본 본 이야기 고슴도치는 사회성이 없다시피 한 동물이니까 혼자 살아왔고 앞으로도 혼자 있고 싶은 윤기. 원래 소매치기 하며 살았는데 그 빌어먹을 성격 때문에 전날 두목이랑 멤버들이랑 싸우고 나왔어. 더러워서 이 짓 안 해. 잘 먹고 잘 살아라, 시발새끼들아. 하고 그날 턴 돈 바닥에 던져버리고 나왔지만, 막상 아침에 눈 뜨고 나니 덮쳐오는 절망감. 시발 이제 뭐 먹고 살아…. 배운 건 도둑질뿐인데 저것도 영역 싸움이 있는 터라 소매치기로 벌어먹고 살 수가 없어..
[국슙 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12.w.몽블랑 * 대전에 돌아온 정국의 몸 상태는 많이 나아졌다. 사실을 말하자면, 몸이 아직 가뿐하지는 않았으나 이대로 침상에 누워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왕좌라는 것은 누리는 권력 꼭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책임을 지는 것이라서, 이 자리를 오래 비우면 꼭 조정에 커다란 일이 터졌다. 조정의 대신들은 각자 생각도 많고 그 생각들도 모두 다 달랐지만, 어떤 때엔 한 사람처럼 뭉쳐 행동하는 때가 있었다. 그 방향은 정국이 예상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었다. 그 많은 정치판의 권모술수들은 손에 쥐일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다. 선왕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 공포정책과 회유정책을 동시에 썼는데, 그로 인해 현재 조정엔 왕권은 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