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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 같은 나도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14. 평소처럼 서에 출근한 윤기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책상에서 울리는 전화에 별 생각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민윤기 씨, 지금 당장 전화 끊고 밖으로 나오세요. 핸드폰 놓고 오십시오. 주위 분들에게 들키지 않게 자연스럽게 나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녹음 버튼 누르지 마세요. 감시 중에 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전화 간 거 보면 아시겠죠.“너 뭔데 아침부터 전화질…”- 따님 되찾아 가실 때가 된 것 같아 연락 드렸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윤기가 제 행동을 멈춘다. 다인의 얘기에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붙들고 어렵게 냉정을 찾는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어디서 들어본 듯 낯이 익었다. “…너 김태형이지.”- 서 앞으로 나와 보시면 차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번호는 ..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13. 윤기를 만나러 가는 날이 정해졌다. 날짜는 내일이었다. 그 사실을 통보받은 지민은 어떻게 다인을 윤기에게 인계하면 될지에 대해 정국에게 설명을 듣기 위해 방에 앉아있었다. 아직 정국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지민 혼자였다. 내일이면, 윤기를 다시 볼 수 있다. 그 생각으로 진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윤기에게 다인을 데려다주고 나면 죄책감도 조금 덜게 될 것 같았다. 내일 윤기를 보게 되면, 자신의 마음이 조금은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 지민은 기대와 설렘을 품고 침대에 앉아 발을 앞뒤로 살랑거렸다. “기분 좋아 보이네.” 기척도 없이 들린 정국의 목소리에 지민이 흠칫 놀라며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정국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12. 지민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방 안은 캄캄했다. 어두운 방안에서 눈을 떴다 감았다, 가 다시 떴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눈을 뜨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인가. 제 상체에서 스르르 떨어지는 이불을 한 쪽으로 힘겹게 밀어낸 지민이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주르륵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허벅지부터 아래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침대를 붙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지민은 온몸의 근육들이 아우성치는 걸 느꼈다. 인상을 찡그릴 힘도 없이 비틀대며 욕실로 들어간다. 샤워기를 틀고 물을 맞으며 캄캄한 창밖을 바라보던 지민은, 이게 언젠가 봤던 장면임이 떠오른다. 그래, 윤기와 함께 있을 때 꿈에서 봤던 장면이다. 그 꿈이 또 현실이 되리라고는 그땐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또 이..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11. 윤기는 드디어 발부된 체포 영장을 들고 BH 인더스트리로 향했다. 영장이 왜 이렇게 늦게 나와, 하고 욕을 하며 서에서 나와 제 차 지붕에 사이렌을 올린 윤기는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회사 전체를 들어내고 싶었지만 윤기는 그럴 수 없는 게 분했다. 현재로서 가장 의심이 가는 건 BH 인더스트리의 대표이사 중 하나인 정국이었다. 다른 것보다도 타 임원진들과 비교해 나이가 너무 어려 눈에 확 튀는데다 별다른 경력 없이 회사에 앉아있는 걸로도 이상했는데, 밑에 부서까지 착실히 있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 업계에서 굉장한 천재여서 헤드헌팅을 당했나, 하고 찾아본 정국의 학력은 일반 고등학교 퇴학에 검정고시 합격, 이 끝이었다. 고등학교 퇴학 사유는 집단 폭행. ..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10. 침대에 두 나신이 누웠다. 한 쪽은 벽을 보고, 한 쪽은 천장을 보고. 벽을 보고 누운 지민에게선 말이 없었다. 정국은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우리 왜 이렇게 됐을까. 더 나빠질 수 없었던 것들이 더 나빠져 감에 정국은 숨을 죽인 채 지민의 기척을 살핀다. 한 번 정신을 잃었던 지민을 뺨을 때려 깨워 다시 몰아붙인 터라 지민이 깨어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지민이 긁히는 목소리로 정국의 이름을 부른다. “전정국.”“…….”“대답해. 전정국.”“…응.”“다인이 보게 해줘.”“…….”“안 그러면… 기대해도 좋을 거야. 내가 무슨 짓을 할지.”“…….”“…….”“형은.”“…….”“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날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해? 물을 수..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9. “민 형사.”“…….”“민 형사.”“…….”“민윤기!”“…예?” 파티션을 살짝 넘길 정도로 차오른 서류와 외장하드 속에서 빼꼼히 눈만 보이며 윤기가 고개를 든다. 그의 핏발 선 눈을 보던 선배 형사인 김 형사는 혀를 쯧쯧 차며 윤기를 밖으로 불렀다. “커피 한 잔 하자.”“아, 네.” 김 형사의 말에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벌써 며칠째 자료에 파묻혀 자료를 보고 또 보는 윤기를 보다 못한 그가 불러낸 것이었다. 서 입구에 마련된 4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두 잔 뽑은 그는 하나는 윤기에게 그리고 다시 뽑은 한 잔은 자신의 손에 들었다. 진지한 얼굴로 ‘네 건 고급 커피다.’ 하면서 종이컵을 건네는 그의 말에 윤기는 힘없이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서를..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8. 며칠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지민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이젠 저항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기억을 잃기 이전의 자신처럼. 이곳에서 탈출하기 전, 자신의 삶처럼. 이 방에만 갇혀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가던 날들. 사실 인생의 시작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고아원에서 태어났지만, 지민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들처럼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만나는 그런 생활. 그런 생활이 손바닥 뒤집히듯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던 건, 바로 정국 때문이었다. 정국은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고 어릴 때부터 지민이 특히 예뻐했던 동생이었다. 정국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때부터 꾹아, 정국아- 하고 부르며 챙겨주면서 형제나 ..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7. 하루를 꼬박 앓고 난 다음, 다음날이 되고서야 다인을 마중 나가는 것에 허락을 받은 지민이 신나게 옷을 챙겨 입는다. 지난 번 지민이 호되게 앓은 후 윤기가 어린이집에 전화를 했는지, 이번엔 전화가 오면 다인을 데리러 가라는 윤기의 말이 있었다. 윤기는 어제와 그제 집에 있더니만 밀린 업무처리를 위해 아침부터 안전가옥을 비운 참이었다. 다인이 올 시간이 다가오자 지민은 시계와 제 핸드폰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평소보다 조금 늦는 것 같아 ‘언제 전화해 주는 거야….’ 하고 시계를 보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다인이 원래 오던 시간에서 10분쯤 지났을 무렵, 지민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네. 다인이 보호자 분 되시죠? 저 다인이 어린이집 선생님입니다.“..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6. - 김태형 씨, 지금 어딥니까. 정국의 갑작스런 전화였다. 화나 보이는 목소리. 태형이 급하게 옷을 챙겨 집을 나선다. 정국의 전화는 이사실로 오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끊겼다. 왜 정국이 화가 났을까. 급히 차를 몰아 도착한 회사의 문을 열고 VIP용의 엘리베이터를 잡아 탄 태형이 제 손톱 끝을 깨문다. 이사실에 도착한 태형이 옷을 정리한다. 숨을 가다듬어 보지만 그리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 벌어질 일이 조금은 예상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똑똑,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두드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한숨을 내쉰 태형이 ‘이사님, 저 태형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문을 연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엉망이 된..
[슙민/국뷔] 인어공주 이야기 05. 서로 출근해 밀린 서류를 작성하는 윤기의 뒤로 윤기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팀장이었다. 자신의 자리로 손짓하는 그에 윤기는 자리로 일어나 팀장에게로 향했다. 예, 하면서 팀장의 앞에 섰는데 그의 표정이 영 탐탁지 않아 보인다. “윤기야.”“예.”“우리가 지금 박지민이 데리고 있은 지 얼마나 됐냐.”“두 달 좀 넘는 것 같습니다.”“별다른 소식 있냐.”“없습니다, 아직은. 저쪽도 조용한 것 같고.”“별다른 소식이 생길 건 같냐?” 팀장의 말에 윤기가 한숨을 내쉰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윤기의 대답에 팀장의 입에서도 깊은 한숨이 터졌다. 안 그래도 위에서 압박이 들어온 터였다. 안전가옥을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